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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고 독재자라 하는 가 ?
정기보 취재기자
200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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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학과에 관심 두는 대입 수험생을 위하여
월드뉴스
200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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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산행기-대만 옥산
정극원 취재기자
2008-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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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 배제원칙과 오마바 당선인 진영의 입장
월드뉴스
200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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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질병. 황사를 막자.
정기보 취재기자
200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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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카펫에 주저앉은 윤세아
윤세아가 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제7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았다.
대한민국 영화대상 측은 총 19개 부문 중 18개 부문의 후보자를 발표했다. 최다 부문 후보작은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추격자’다. 이어 ‘세븐 데이즈’가 8개 부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7개 부문, ‘고고70’이 6개 부문, ‘멋진 하루’가 6개 부문, ‘영화는 영화다’가 6개 부문, ‘모던보이’가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다음서)
월드뉴스
200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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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사무침이 멈췄다.
팔공산(은해사-기기암-능선재-중앙암)
사무침이 멈췄다.
위로도 막혔다.
아래로도 막혔다.
사무침이 활로를 잃었다.
사무침이 응고가 되었다.
사무침은 천하의 바위가 되었다.
동이 튼다.
동이 트자,
바다가 요동친다.
바닷물이 붉은 태양에 빨려든다.
태양은 바다를 두고 홀로 떠난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자,
산이 꿈틀거린다.
바람의 길을 따라 펼친 능선이다.
바람은 능선을 두고 홀로 분다.
능선에 빨려든다.
거대한 팔공산에 끌렸다.
옥석을 가려내려는 듯,
산길입구를 뒤덮은 낙엽이다.
낙엽이 위병처럼,
산능선의 출입을 감추고 있다.
뜻한 자에게만 출입을 허용하는 것이다.
은해사 지나,
기기암을 향한다.
낙엽을 응시한다.
낙엽이 길을 열어준다.
큰 줄기의 물에,
작은 줄기의 물이 합수한다.
장강이 되는 까닭이다.
큰 줄기의 능선에서,
작은 줄기의 능선이 뿜어져 나온다.
펼친 능선이 되는 까닭이다.
물의 합수처럼,
작은 줄기의 산능선에 접어든다.
동이 텃으니,
낙엽은 햇살에 의탁하여 물기를 털었다.
바람이 한 줄기 부니,
낙엽은 정처없이 지상으로 낙하한다.
태양을 닯아 붉은 낙엽이 눈처럼 내려 홍설이 된다.
바다를 닮아 푸른 솔잎이 구름처럼 올라 청운이 된다.
새벽에 산은 이미 미명에서 깨어났다.
동이 훤히 트고도 인간은 아직 수면이다.
낙엽이 담요처럼 포근하게 쌓였다.
잠에서 깨지 않아 눕기만 한다면,
그 위로 이불처럼 낙엽이 내릴 것이다.
잠이 들고 싶도록 안온한 낙엽이다.
팔공산의 낙엽이 두꺼운 솜이불같다.
바람도 어찌하지 못한다.
낙엽은 뾰죽한 능선길에도 쌓였다.
그 능선에는 한겨울에 눈도 쌓이지 않는다.
낙엽이 너무나 포근하여 눈도 녹이는 모양이다.
차가움도 어찌하지 못한다.
소나무의 푸름이 하늘에 진하다.
땅위의 낙엽의 진한 두께만큼이나,
창공에 가지를 펼친 푸른 소나무이다.
걸음을 멈춘다.
기기암 뒷산의 바위때문이다.
고압전류에 감전된 듯,
걸음을 뗄 수가 없다.
기기암의 요사채에 앉으면,
그 바위가 불상처럼 보일 것이다.
산에서 정하는 것이란,
무의미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가 보다.
산에서 정하는 것이란,
그 모든 것이 유의미한 것이다.
산의 조화이다.
바위로도 족하다.
거기에다 소나무를 더한다.
산은 천하의 절경이 된다.
바위는 미동도 할 수 없으니,
소나무를 통하여 세상에 말을 거는 것이다.
바위의 평면이 있고,
그 앞에 소나무가 서 있다면,
사람은 털썩 주저앉을 것이다.
여장을 풀고 휴식하는 것이다.
바위에 앉아 소나무에 눈을 맞춘다.
소나무를 통하여 바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바위와 소나무가 소통하는 증거이다.
어디인들 절경이 아닌 곳이 있으련만,
바위와 소나무덕에 절경인 팔공산이다.
바위와 소나무의 소통에 귀 기울인다.
귀에 손을 대자 눈이 다정하여 진다.
다정한 눈을 들어 저 너머의 공제선을 올려다본다.
오른편의 능선재를 넌지시 바라다본다.
왼편 끝자락의 갓바위가 출항하는 배같다.
출항을 준비하는 선원처럼 그 능선길에 사람들이 바쁘다.
어디인들 명당이 아닌 곳이 있으련만,
너무나 사무쳐 솟은 바위들이다.
막대바위 세 개가 하늘의 도장인 듯,
세상이 개벽할 때에 날인을 하고서 세워 두었다.
세상의 개벽이 아직도 유효한 까닭은 그 도장덕이다.
그 첫 날인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 막대바위가 삼인암(三印岩)이다.
그 아래에 햇살을 쬐고 있는 중앙암이다.
팔공산의 기운이 다 모인 곳이라 한다.
위로도 아래도로 더는 펼칠 곳이 없는 사무침이었다.
사무침이 정수처럼 녹아있다면 그곳은 이미 명당인 것이다.
언젠가 삼인암의 도장이 다시 소용되는 날,
중앙암에 멈춘 사무침이 그 갖힘을 풀고서 세상에 펼쳐질 것이다.
정극원 취재기자
2008-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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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과 희망직업
월드뉴스
200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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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와 좌파가 없으면 죽은 사회다.
우파와 좌파가 없으면 죽은 사회다.
가정과 직장으로 제 각각 본인의 신분이 갖추어져 있는 것을 사회라 한다.
즐거운 가정을 지키면서 개인의 소질에 따라 일하는 직장이 뒷받침이 되어서 활발한 사회는 개인의 명예를 저울질하면서 한편에는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세상이 오늘날 인류가 사는 문화생활의 방식이다.
옛것을 소중히 여기며 보전하면서 현대문명을 열어가는 창조와 발전을 지속하려면 사회구성의 두 원칙을 나누게 되는데 우파와 좌파의 색깔이다.
지구촌의 나라들이 선진강국일수록 우파와 좌파가 민주주의의 성장원칙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데 비단 우리나라만큼은 이상하게도 그 성향분석이 달리 인식되고 있다.
우파를 극단적으로 수구(守舊) 꼴통으로 좌파를 좌빨로 몰아 부치고 있다.
수구(守舊)는 옛것을 그대로 지키자는 뜻으로서 보수주의로서 진보주의로 가자는 성향인데 수구를 수구꼴통으로 빗대 부르는 것은 보수주의를 바보멍텅구리로 부르는 고약한 성격의 표시가 된다.
좌빨은 말 그대로 좌익이 빨갱이라는 극단적이고 소름끼치는 인신공격이다.
그러나 사상이 다른 공산주의 선봉자나 공산주의에 세뇌된 자의 위장침입을 방관하면 좌빨에 의한 암혹의 세상이 되므로 반공정신을 철저히 전개해야한다.
빨갱이란? 공산주의를 빗대어 부르는데 좌익의 성향하고는 전혀 다른 극한투쟁을 하려는 구실로서 빨갱이로 모는 성향이다.
좌익을 빨갱이로 몰아 부치기 때문에 선량한 국민들은 아예 좌익의 모임과 진보주의적인 행사마저도 회피하려는 현대문화의 거부반응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반만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원인이기도 했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게 된 박정희 대통령 경제정치 시대를 맞이하여 보수와 진보의 경계심에서 보수가 진보적으로 발전하여서 우리나라도 경제 부흥의 선진문화를 누리게 된 것이다.
지구촌을 보호하는 환경운동은 영원한 좌파성향 단체로 되어야 환경운동이 제대로 실현되는 것이다.
자연을 보호하고 동 · 식물의 생태계를 보전하는 환경보호 운동은 고도로 발달하는 생활문화 속에서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모든 정책과 개발을 집회의 슬로건으로 저지하는 시대적 사명이 환경운동의 기본 사상이다.
환경운동원의 항의로서 환경 정책에 반영되게 하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지킨다는 이 땅의 주인의식이 바로 좌파의 성향이 아니고는 절대로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환경운동원이 정부의 환경파괴를 보면서도 이를 회피하거나 동조한다면 이야말로 수구 꼴통이라는 극단적인 말이 더더욱 어울리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경제 강국이 되려면 좌파 우파의 성향을 분명히 하면서 서로 경계하고 장점은 살려서 발전시키며 단점은 보완하여 전 국민이 함께 계몽하며 전개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착이다.
비단 남과 북이 총부리를 맞대고 있어도 우리나라가 경제 강국으로 발전하고 남북통일을 앞당기려면 북한을 의식하는 좌빨이라는 용어를 삼가했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초고속 정보 인터넷 강국이다.
우파 좌파의 민주주의 원칙에서 우파를 수구꼴통으로 몰아서도 안 되고 좌파를 좌 빨로 몰아가는 극단 사회의 무질서를 우리 국민들은 어느 나라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다.
다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좌파성 모임에 치안경계를 너무나 강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어쩐지 석연치 않는 모습들이다.
정부 기강이 좌파의 소리를 강압적으로 차단하든지 다른 약점을 잡아서 형법으로 다스린다면 자칫 독재라는 누명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다.
좌파의 행위가 민주주의와 현행법을 벗어나서 난동과 파괴로 대응한다면 이 또한 좌빨의 성향이 될 수 있으므로 사회 단체모임과 활동들이 충분한 토론과 함께하는 다짐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대한민국은 척박한 땅을 일구어서 기름진 농토로 가꾸어 왔고 지하자원 없는 강산에서 산업경제를 성공적으로 일구었는가 하면 전 국민이 함께 하는 새마을 운동으로 경제부흥에 성공한 나라다.
대한민국 국민은 가난과 비좁고 척박한 땅의 시련을 슬기롭게 넘기고 지구촌을 울리며 88서울 하계 Olympic을 성공적으로 실현했는가 하면 2002년 FIFA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대한민국을 하늘높이 외치며 국위선양하고 만방에 떨친 한국의 힘은 위대한 국민의 힘이었다.
우파 좌파의 갈림길에서 시름하는 대한민국의 길은 개척의 길이다..
전 세계를 깜작 놀라게 하는 정치제도가 바로 눈앞으로 다가오는 현 시점에서 위대한 한국인의 대견한 얼굴에 감사와 기쁨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정기보 취재기자
200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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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보현산
영천 보현산(해발 1126,4미터)
오솔길,
아스라한 오솔길이 계절을 징표하고 있다.
오솔길은 자연이다.
인공이 가미될 여지가 없다.
오솔길은 고향이다.
고향의 집으로 귀가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솔길은 굽이길이다.
굽이에서 끝간 데가 보이도록 가늘게 펼쳐진다.
오솔길은 구부러진 길목에서 끝나는 것이다.
오솔길을 걷는다.
길 위에는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길 위에서는 무용한 것도 멋지다.
길 위에는 낙엽이 지천이다.
쌓여서 그렇게 보인다.
쓸어내지 않아서 그렇다.
아침에는 물기를 품어 영롱하다.
밤에는 온기를 품어서 안온하다.
오솔길 저 너머의 기억이 반추된다.
가로등이 비추는 야광이 희미하다.
굽이 한번 돌아서 저 만치 가본다.
금새 나타날 것 같은 이성을 찾아 떠난다.
내리는 것은 낙엽뿐 공허이다.
내리는 것은 청아한 공기일뿐 사람은 없다.
신작로를 만나는 지점에 오솔길이 끝난다.
신작로를 만나 젊은 방황이 멈춘다.
오! 솔길,
보현산에 탄성한다.
소나무의 길을 접어든다.
산초입부터 소나무가 도열하고 있다.
참나무가 소나무를 에워싸고 있다.
마치 소나무를 호위하는 호위병같다.
보현산에서는 참나무가 소나무보다 더 당당하다.
소나무의 기운을 받아서 그렇다.
산오르는 길,
굽이굽이 오솔길이다.
소나무에 탄성하는 오!, 솔길이다.
발밑에 소나무낙엽의 갈비가 노랗다.
갈비가 발자국 소리를 땅에 전한다.
땅이 포시랍다.
오른쪽으로 휘이 나아간다.
사라지는 꽁무니같다.
왼편으로 휘이 접어들면 뒷길이 사라진다.
길의 지그재그가 대칭을 만들고 있다.
점점으로 오른다.
점점의 발자국을 남긴다.
능선이 적요하다.
멀리 겨울잠행을 떠난 듯,
새들이 산을 비우고 있기 때문이다.
숲이 내려 앉았다.
가을시간을 호령하던 억새가 겨울맞이로 땅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 정중하다.
구들장에 쓰기에 적합한 돌이 평평하게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의연하다.
여름 활엽수를 대체한 소나무만이 푸름으로 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와 자웅을 겨루던 활엽수가 잎을 다 떨구고 있다.
그래서 보현산은 소나무의 산이다.
능선에 오른다.
갈미봉(해발 789미터)이 보인다.
수줍음의 새색씨같다.
옷자락같은 안개로 가리고 우뚝 서있다.
갈미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평화롭다.
갈미봉으로 향하는 걸음이 푸르다.
갈미봉을 바라보는 시선이 맑다.
세상에서 제일 맑은 공기를 느낀다.
소나무가 보내는 반가운 수인사이다.
소나무가 방향타구실을 하고 있다.
산의 품을 기세로 긴 가지를 펼치고 있다.
소나무가지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동남쪽으로 펼친 가지가 일목요연하다.
그래서 소나무가 방향타가 된다.
길에서 벗어나 본다.
소나무에 더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서이다.
소나무가 전하는 음성을 경청한다.
경청하는 것이 세상을 사는 지혜임을 깨닫는다.
소나무앞에서 세상의 소란을 경원한다.
평원같다.
큰 산에서는 완만한 경사가 그렇게 의미된다.
갈미봉 길목에서 평원을 느낀다.
그 옛적에 연기를 피워올렸을 봉수대를 떠올린다.
갈미봉 어디에 그 흔적을 추적하여 본다.
젊음을 다 바쳤을 봉수대의 용사가 떠오른다.
차가운 개울을 맨발로 떠나왔을 젊음이었을 것이다.
사명때문에 고향의 사무침도 참았을 것이다.
갈미봉은 그 세월의 사연으로 바람이 차다
정극원 취재기자
200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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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강이 맑은 세상에서 살자.
정기보 취재기자
200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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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싱 걸 '미쳤어 의자 댄스'
레이싱걸 의자댄스 미쳤어 ! 댄스
월드뉴스
200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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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의 외로움
예천 회룡포
가파르지 않는 산길을 길다.
가파른 산길은 험난하지만 짧다.
지름길을 만드느라 그런 것이다.
평지에 서면,
게으름을 피우기 십상이다.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꾀를 부려서 핑계를 된다.
산길에 접어들면,
먼길을 걷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소나무를 은폐물로 하여,
평상에 젖어 있는 마을을 내려다 본다.
편안함은 시골마을이 작동하는 원리이다.
멀리서 그 편안함을 바라다본다.
그러면 들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지나치고 싶었지만,
낮선 개입으로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예천의 회룡포,
마치 용이 굽이치듯 흐르는 물,
정상인 사림봉에서 그 마을을 내려다본다.
회룡포가 남성의 성기를 형상하고 있다.
그래서 왕조에 반역하는 장정이 태어날까 두려워,
그 혈맥을 잘랐다.
섬뜩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는 비가 내리면 선혈같은 붉은 흙물이 흘러내린다.
그 계곡의 이름이 사골이다.
사림봉에서 소나무의 가녀림을 본다.
아마도 수백년의 수령이 되는 나무이다.
햇살이 버거워서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산정의 바람이 세차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절단의 역사를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지름길을 찾아 하산을 한다.
언덕을 가로 지르려니 가파름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한 순간이라도 더 빨리 회룡포의 강물에 맨발을 담구고 싶어서다.
맑은 물에 보이는 모레를 밟으면서,
발을 타고 전하여 오는 아싸함을 누려본다.
문득 외로운 생각이 든다.
역사란 당하는 자에겐 처절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역사를 겪고서도 겉으로는 온전한 회룡포마을이다.
외로움은 휴식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외로울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안하여도 된다.
오직 그 시간을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일에서의 휴식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추신: 예천 회룡포는 배처럼 생겼다하여 우물이 없다.
우물을 파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것이 이유이다.
정극원 취재기자
200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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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용봉산
용봉산(충남 예산·홍성, 해발381미터)
쌓는다.
계곡에 접어 들면,
돌이 흔하니,
탑을 쌓는다.
쌓는 동안에는,
마음을 가눌 수가 있다.
가누는 마음이 정갈하다.
쌓는 것에 비례하여,
혼돈이 꼬리를 내린다.
그러하니,
하늘을 향하여서도,
들판을 걸으면서도,
산길을 오르면서도,
쌓고 또 쌓으려고 한다.
쌓다 보면,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비록 세상에 남기는 것은 못되고,
궁극에는 사라지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과정은 남는 것이다.
산에서의 걸음이 그러하다.
수암산(260.1티터) 초입에 접어든다.
오른쪽으로 휘이 방향을 꺾는다.
보살입상을 참배한다.
미간을 타고 흐르는 천년세월이다.
응시한다.
수평에 시선을 둔다.
차분한 인간의 눈높이다.
용봉산이 저기에 아스라하다.
용봉산 저기로 갈 길이 멀다.
올려다 본다.
수직에 시선을 둔다.
수암산이 친근하다.
수암산의 바위가 부드럽다.
하늘에 맞닿은 바위이다.
견고한 통문같이 우뚝하다.
바위가 빗장을 열어준다.
마치 프리즘같다.
바위의 프리즘을 통과하는 시선이다.
안타까움이다.
한 눈에 다 보기에는,
수암산의 세월이 너무나 장구하다.
수암산의 바위가 너무나 수려하다.
내려앉는 것이 바위의 속성이다.
용봉산에서는 바위가 솟아 오른다.
그러하니 얼마나 기묘한 경관인가.
아득한 세월이 흘렀다.
영겁의 세월이었다.
바위가 그 세월의 주역이었다.
이제 지상에서 절경을 접고서,
하늘에 오르려는 채비같다.
바위의 형상이 제각각이다.
산능선의 돌고래바위도,
산경사면의 광개토대왕비바위도,
창공에 맞닿은 톱날바위도,
산중턱을 가로놓는 병풍바위도,
덩달아 악기봉이 요동한다.
바람결을 타고 연주를 시작한 것이다.
바위들은 지상의 그 선율을 따라,
천상에 오르려는 거대한 출발선에 섰다.
영겁의 세월을 기다린 이유가
아마도 악기봉이 울리는 선율이었나 보다.
그 장관의 순간을 목도한다.
쌓으려는 적선의 덕인가 보다.
청아한 공기가 지천이지만 숨이 막힌다.
걷기에 순탄한 길이지만 미동도 할 수가 없다.
움직이지 말라는 하늘의 뜻일 것이다.
전율하여 가슴이 터질지라도 지켜보라는 명령같다.
일렁인다.
미풍이 작동한다.
산의 푸름이 바다같다.
노적봉에 햇살이 작열한다.
노적봉이 거느린 앞마당 같은 평지에 선다.
푸름의 풍경이 상생한다.
산은 내리달려 들을 향하고,
들은 산으로 이어달려 편안하다.
노적봉에서 들을 바라다본다.
홍천의 풍경이 이국같다.
적요때문인가 보다.
인간의 군집은 드물고,
자연의 평정은 넓디 넓은 것이다.
몇 채 보이지 않는 인가에도,
그 집채를 다 뒤덮은 푸름이다.
인간의 흔적은 자자들고서,
펼쳐진 들판은 광활한 것이다.
그것이 인간과 자연의 원래적 상생인 것이다.
정상에 솟은 바위이다.
용봉산이다.
기대면 넘어질 듯 표지석이다.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진다.
용이 봉황을 만난 것인지,
봉황이 용을 만난 것인지,
그 형체를 보고서도 연역해내지 못한다.
서로를 향한 사모였을 것이다.
진실로 사모하였으니,
세월이 아깝지 않은 것이다.
진정으로 사모하였으니,
펼치는 품이 너무나 광대한 것이다.
애틋하게 사모하였으니,
바위들이 빚은 그 형상이 너무나 애절한 것이다.
용봉산의 바위가,
하늘로 향하여 채비하고 있는 까닭은,
사모하는 그 마음이 너무나 고결하기 때문인가 보다.
용봉산의 바위마다 맺힌 애절한 풍광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안다.
물욕에 좌우되는 인간이,
그 고결한 사모를 알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월드뉴스
200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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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들의 해외 진출에 대해
월드뉴스
200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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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흙과 주택의 쾌적함
정기보 취재기자
200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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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과 한국인
민족마다 식사하는 습관(習慣)이 다르다. 어느 민족은 포크로 식사를 한다. 어느 민족은 맨 왼손으로 식사를 한다. 그들은 왼손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해야 한다.
한국민족은 식사 예절(禮節)을 중시한 민족이다. 식사 도구인 숟가락과 젓가락을 이용해서 식사를 하는 식습관을 가진 민족이 한국민족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젓가락을 어린 시절부터 능숙하게 다루면서 식사를 한다. 식사 시간도 다른 민족에 비하면 긴 편이다. 조선의 양반 가문에서는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식사를 하는 시간도, 설것이를 하는 시간도 한 두 시간 정도씩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었다.
식솔들이 많은 집은 수저 젓가락 세척(洗滌)에도 다수의 시간이 든다. 한국인처럼 식사시간에 젓 가락을 이용하는 민족은 몇 민족을 제외하곤 좀처럼 찾아보기 힘이 든다.
젓가락을 이용하다보면 손재주가 는다. 정교한 손가락간의 협응 능력이 생겨난다. 이것은 정교함이 요구되는 산업에서 일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한국인의 정교(精巧)한 직업능력은 젓가락에서 오는 것 같다.
반도체메모리를 만들어 내는 정교한 기술을 익히는 데는 한국인들이 젓가락을 식사시간마다 이용하는 것이 크게 보탬이 된다는 이런 나의 주장이 일리가 있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고 한국인 Y는 말한다.
Y의 말은 한국인 스스로의 자화자찬(自畵自讚)인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한국인들의 식사에서의 젓가락 이용을 통한 정교한 직업 능력 배양은 바다에 항해하는 배를 만들어 내는 조선 분야에서 세계 1등을 하게하고 있다.
조선(造船)이야 말로 정교한 손가락 협응 능력을 갖지 않고는 만들어 내기 힘든 상품이 아닌가. 이제 한국인들은 젓가락으로 함양한 정교한 직업 능력으로 유람선을 만들어서 글로벌 시장에서 호평(好評)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젓가락을 이용해서 하루 세끼를 먹는 민족답게 양궁에서 세계 1등이다. 그래서 양궁 선수는 물론 양궁 코치들도 각국에 진출해서 일하는 중이다.
이들이 양궁에서 탁월한 자질을 발휘하는 것도 나무나 함석으로 된 미세한 젓가락을 식사에서 이용하는 한국인들이 갖게 된 능력이라고 평가 할 수 있다.
심장을 치료하는 그런 기기 제조 연구 산업을 의용공학산업이라고 한다. 이 분야의 직업들에는 기기를 다루는 정교함이 요구된다. 정교한 손가락 반응 력 이 없이는 이런 의료기기를 연구 개발해서 상품화 하기는 힘이 든다는 말이다. 이런 기기를 의용공학기기라고 한다. 의용 공학 연구원들에 의해서 이 기기는 만들어 진다. 이런 기기를 만드는 기술을 한국에 전이하면서 한국에서 만들려고 하는 기업이 존재한다.
그 기업이 바로 독일의‘ 지멘스’다. 의료 기기분야에서 정밀도를 자랑하는 이 기업은 지금 한국에 공장을 짓는 플랜을 시행하는 중이다. 한국인들의 손가락 정교함은 의용 공학을 연구하기에 좋은 토양이 된다고 이회사의 리더들은 판단을 한 것이다.
이런 판단을 하는 데는 여러 근거를 생각하고 비교한바, 한국인들은 젓가락을 이용하여 식사를 하고, 그것이 한국 민족의 정교한 손가락의 놀림에 기여한바 크다고 이들은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런 저런 요소를 생각해서 이 프로젝트를 지멘스가 진행 했을 것이다.
그렇다. 한국인들은 그들의 젓가락을 이용한 식사행태 속에서 함양한 정교한 직업 능력을 자동차 분야에서도 발휘 한다. 현대 자동차, 삼성 르노 자동차 회사들이 만든 자동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호평을 받는 중이다.
한국이 일만 오천 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정교함이 요구되는 자동차 산업에서 살아남아서 비즈니스를 해가는 데는 젓가락을 이용해서 식사를 하는 식습관이 작용 했을 것이다.
한국인 프로 골퍼 중에는 박세리가 존재한다.10년 전 박세리의 연못에서의 투혼을 지켜본 박세리를 보면서 부모에게 골퍼를 직업으로 하고 싶다고 조르던 소녀들이 있다.
바로 김인경, 오지영, 신지애 선수 등이 그들이다.
이들 박세리 후예 들은 박세리가 프로 골퍼로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커서 저런 선수가 될 것이다‘고 상상하면서 골프를 했을 것이다. 이들이 프로 골퍼로서 글로벌 대회에서 다른 민족 출신들과 경쟁에서 우승을 한다.
이들의 성공 뒤에 무엇이 존재 하는 것인가. 아마도 한국 민족의 젓가락을 식사에서 이용하는 그런 습성에 기인한 정교함이 아닌가 싶다.
정교한 골프에서의 게임은 이제 박세리 후예 들이 성장하면서 달고 다듬게 될 것이다.
정교함의 추구는 바로 한국인이 시작한 어느 분야에서건 일등을 하고 싶어 하는’강한 승부 욕구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분명 생각해야 할것 중의 하나는 한국인들은 직업적인 저력이 있는 민족이라는 점이다.
한국인이 미래에 장남 감 로봇, 애완 용 로봇, 상업용 로봇, 산업용 로봇, 청소용 로봇 등을 개발하고 연구하는데도 젓가락이용을 통한 식습관이 상당히 긍정적인 작용을 할 개연성이 높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인가.
한국인들의 젓가락을 이용한 식사 습관은 앞으로도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다. 직업 능력을 갖추어 가는데 젓가락을 하루 세끼 이용하는 것은 충분한 사전 운동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
한국인들은 우수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민족 중에서 한국인은 젓가락을 이용한 식사습관으로 인하여 정교한 직업 역량을 갖추는데 유리한 여러 요소를 지닌 민족이다.
이런 자기 인식은 지금 경제 불황의 고통 속에서 고생하는 지금의 우리 민족에게는 한마디의 희망의 등대로 작용 할수 있는 자기 성찰(省察)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造船)에서 반도체에서 자동차(自動車)에서 의용 공학에서 로봇 산업에서 세계 일등을 하는 민족으로의 미래 도약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민족 스스로의 내재된 직업적 저력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새로운 연구와 개발하는 일을 한결같이 해가는 그런 진지함이 우리의 미래를 성공하는 민족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젓가락을 이용해서 식사를 한 우리조상들의 슬기가 돋보이는 중이다. 이제 21세기기술 경쟁의 시기에 새벽의 정신으로 이 글로벌 경제위기속에서도 젓가락 기술로 직업 시장에서 정교한 일솜씨를 보이면서 고군분투(孤軍奮鬪) 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좋은 자질을 가진 민족이라도 스스로 각성해서 다듬고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수확의 계절은 요원(遼遠)할 것이므로.( nnguk@yonsei.ac.kr)
월드뉴스
200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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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거칠어도 포근하다
청도 운문산(해발 1188미터)
가장 낮은 곳에 선다.
더는 내려갈 곳이 없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른다.
더는 올라갈 곳이 없다.
둘러본다.
낮은 곳에서는 혼자이다.
그곳에 서서 세상에 대적한다.
혼자라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된다.
둘러본다.
높은 곳에서는 무리로 모인다.
그곳에서 서서 세상에 겸허해야 한다.
무리에서 세상이 속속 다 보이는 것이다.
무리에서의 오만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운문산이 마치 석류같다.
그 둥글기가 석류모양같다.
그 두꺼움이 석류껍질같다.
껍질로 알을 감싸고 있는 운문산이다.
껍질이 되어 고이고이 능선을 지키는 산이다.
운문산초입에서 모성애가 떠오른다.
어린아이를 품은 어머니 같은 형상이다.
초입부터 엄청 가파른 산길이다.
초입부터 심층의 계곡이다.
산은 거친데 마음은 한없이 안온하다.
어머니의 크나 큰 품에 접어든 것이다.
석골사에서 시작한 산행이다.
석골사를 끼고 있는 계곡이 깊다.
선녀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서있느라(선녀) 앉는 것을 못한다.
햇살내리는 바위에 턱하니 앉는다.
옛적에는 선녀가 내려 멱감았을 것이다.
산에서는 계곡이 그 선두에 서서 겨울채비를 한다.
계곡의 물이 그 청아한 맑음으로 변색하는 것이다.
그곳이라면 분명 선녀가 목욕을 즐겼을 것이다.
깊은 산에서는 그늘도 짙다.
그늘조차도 산을 닮은 것이다.
옛적에는 그 그늘에도 터 잡고 살았을 것이다.
산길 양옆의 집터며 논의 흔적이 아스라하다.
산천은 세월을 대면하여 피하지 않는데,
인간은 세월에 대적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화살촉처럼 딱밭재를 가리키는 이정표다.
발밑에 지천인 돌들을 밟는다.
역동하는 기운이 돌에 부딫혀 요란하다.
돌들이 소리로서 인간에 응수를 하고 있다.
깊은 산임에도 야트막한 곳의 오솔길이다.
그 길을 따라 입산을 하였을 것이다.
저마다의 사연은 달라도 그것은 처절한 생존이었을 것이다.
나무에 감춰진 산길은 그 생존의 징표인 것이다.
임란에서는 왜적의 침탈을 무찔렀던 의병의 길이었을 것이다.
조선말기에는 관가에 대항하는 민초들의 길이었을 것이다.
동란의 전후에는 이념에 목숨을 맡긴 빨치산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걸었던 그 길에서 걷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입산은 하산이 없었기에 너무나 처절하였던 것이다.
그 사연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바위가 한낮의 상념에 젖어있다.
딱밭재의 바람이 능선과 능선의 연락병처럼 바쁘다.
딱밭재의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 머리가 상쾌하다.
맑은 머리로 상념의 바위들을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딱밭재에서 올려다보는 바위는 그 품격에서 명품인 것이다.
바위위에 상생하고 있는 푸픈 소나무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명품은 혼자 감추어 자랑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있음인 것이다.
인간의 것은 옹졸에 친하다.
움키고 감싸면서 자신을 가두기 때문이다.
산의 것들은 관용에 친하다.
능선은 하늘에 닿고 다른 산에 이르기 때문이다.
능선에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위에서 뒹군다.
바람을 피하여 한곳에 모인 적설이 고마운 것이다.
눈길 걸으면서 남기는 발자국의 의미가 떠오른다.
“들판의 눈위에 발길 함부로 남기지 마라.
뒤따라오는 사람의 좌표가 된다.”
사명대사의 “답설야중(踏雪野中)”의 글귀가 떠오른다.
내가 다시 걸어가지 않는다고 눈길을 망칠 수는 없는 것이다.
운문산의 바위는 그 모양새가 그야말로 석류를 닮았다.
곳곳에서 알알이 혼자서 산중턱을 차지한 바위이다.
알알의 바위들은 서로가 사무쳐 산의 가운데로 기울고 있다.
산중턱의 바위가 온통 그렇게 특색을 띠고 있다.
바람은 능선위에서 그 차가움을 윙윙 예고음으로 들려준다.
저편의 산넘어에 운문사 사리암이다.
이빨처럼 하얀 모습을 들어 내고 있다.
이편의 산안에 상운암이 평화로움을 구가하고 있다.
저편의 사리암이 마치 쪽빛 바다 망망대해의 하얀 돛단배 같다.
감탄이외에 그 무슨 말로도 덧칠할 수 없는 절경이다.
그곳에 들면 바위를 뚫고서라도 승천할 수 있을 것이다.
산 중턱의 사리암의 하얀 운치가 하늘에 닿아 있는 것이다.
운문산의 정상에 선다.
구름은 간데없고 엄동설한이다.
구름이 운집하여 문하를 이루었을 것이다.
구름은 저 홀로 휴식을 떠난 것이다.
차가운 날씨가 구름에게 겨울휴가를 준 것인가 보다.
구름 없는 저 편의 끝간 곳에 천황산이 보인다.
딱 1미터가 더 높은 천황산(해발 1189미터)이다.
첩첩으로 숨어있는 재약산이 그 오른편에 우뚝하다.
보무도 당당한 진군을 환영하는 듯 품을 벌린 간월산이 왼편에 편안하다.
늘 그러하듯이 정상에 서면 마음이 숙연하다.
늘 그러하듯이 올라선 정상보다는 더 높은 정상이 있는 것이다.
늘 그러하듯이 정상에 올랐으니 하산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늘 그러하듯이 정상에서는 자연의 위대함에 숙연하여지는 것이다.
늘 그러하듯이 나는 한낮 인간에 불과한 것이다.
상운암에서 물 한 모금 마신다.
결빙을 뚫고서 졸졸 솟아나는 샘물이다.
산이 나를 놀려 먹으려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명당을 말하라” 한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서 말하리라.
그곳은 바로 이곳 상운암이라고.
나는 오대산의 적멸보궁을 절터라 한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에 비견하여 가장 멋진 “절터”라고.
그 적멸보궁이 내보여 줌으로서 분명 명당인 것이다.
상운암의 스님이 떠오른다.
낮선 내방객을 위하여 큰 주전가 가득 차를 내놓는다.
산에 귀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으랴.
귀한 온갖 약초를 다 넣어서 끓인 차이다.
수인사를 나눈 내방객에게 내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마음껏 마실 수 있도록 내놓는 차이다.
스님의 한량없는 그 베품은 아마도 명당의 기운도 한 몫을 하였을 것이다.
사람조차도 감응하게 하는 곳이니 그보다 더한 명당은 없는 것이다.
상운암의 요사채 처마에 고드름이 키재기를 하고 있다.
고드름은 산의 꼭대기를 닮아서 뾰족한 것이다.
고드름은 그 객기를 부려서 산의 형상으로 크는 것이다.
고드름 한 개를 입에 웅얼거리면서 십어 먹는다.
상운암 요사채의 굴뚝에서 장작불의 연기가 피어오른다.
명당을 만나 피어오르지 못하는 것이 그 무엇일까.
정극원 취재기자
200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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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한 분야의 최초의 사람이 된다는 것.
월드뉴스
200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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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대운하 계획 취소는 참 잘한 일이다.
한반도의 인구밀도는 평방킬로미터 당 454명으로 세계 3위로서 방글라데시가 836명으로 세계 최하위로 되어있으나 한반도는 대부분이 산맥으로 뻗어 내려서 강을 이루고 평야가 적어서 세계 최상위가 한반도라고 봐야한다.
1960년대 중반부터 경제개발이 일어나고 대부분 넓은 평야에 산업시설이 들어섰는가 하면 고속도로와 고속전철 및 산업도로 망 확장으로 산업물동량과 인력 운송수단은 현대문명으로 잘 개발 되었으나 인간이 활동하는 범위와 농작 지대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서 오늘날 모든 농산물은 4계절 전천후 비닐 하우수로 대량 생산 개발에 의존되고 있다.
공해를 유발하는 산업시설 주위에 대기공해를 정화해야 될 수림 완충지대가 반드시 조성되어야 되는데 부지를 확보해야 될 땅이 없어서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비좁은 공간에서 반 만년동안 가꾸어온 조상의 찬란한 금수강산이 대운하로 인하여 생태 변화가 일어나고 홍수범람. 식수오염. 산업물류 유통의 지연. 등으로 백해무익한 대운하 계획을 저지 하느라고 많은 학자와 환경단체로부터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또한 도시마다 여유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채 무 분별한 고층아파트와 지상복합 오피스텔 난립으로 풍향의 장해가 되고 있고 산업시설과 차량의 배출로 인한 매연으로 연막현상이 발생되는가 하면 도시생활의 기관지 호흡장해가 도시병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 현상이 오늘날 우리나라 도시 생활의 자화상이다.
이렇게 한반도의 비좁은 땅에서 한반도 대운하 계획이란 생각만 해도 끔찍한 필요악으로 예측 할 수 있다.
경부운하와 호남운하를 연결하는 여러 산맥의 퇴적층이 다르게 나타남으로 퇴적단층의 충돌에 의해 산이 솟아나는 지형으로 이루어 졌으며 서로 각각의 정기와 지기영향으로 토질에 따른 나무의 수종도 다르고 지역마다 말투가 다르게 구사되는 형상으로 추측 되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의 산맥이 백두산을 갑산으로 하여 백두정맥이 산정기의 흐름이 끊이지 않고 이어 졌는데 풍수지리학적으로 무수한 명당 혈이 인걸은 지령이라는 윗대 조상의 산소로부터 산의 정기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지반 층으로 흐르는 혈맥이 지리산과 해남의 땅 끝 마을 앞바다를 거쳐서 한반도의 안산이 되고 있으며 산의 흐름이 끊어지면 일본 땅의 지각변동이 우려되기도 한다.
전남 화순군 도암면에 있는 절 운주사는 대 혈맥이 흘러서 이곳에 맺힌 정기가 일본으로 흘러가므로 이를 막기 위하여 천불 천 탑을 조성했다고 하며 그 일대의 사찰에는 아예 범종에다가 일본 열도를 새겨 넣어서 일본으로 흘러가는 강한 정기를 누르는 지맥이 알려지기도 한다.
한 예를 들어보면 영남 알프스로 부르는 가지산 일대 정기가 부산의 금정산으로 뻗어서 초읍동 뒷산에서 하나의 대 혈이 되어 있는데 동네 정씨 시조 묘가 안택되자 부산 앞바다의 지형 변화가 일어나서 부산 앞바다 해안의 산이 바닷물에 미끄러지듯이 움직여서 안산의 한 봉으로 자리 잡았다 하며 그래서 산의 지명을 아치 산으로 불러오고 있다.
산의 정기가 물을 통과 할 수 없어서 머물고 물이 산을 통과 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이치로 보면 한반도 대운하의 설계가 백두산으로부터 내려오는 태백산의 정기가 터널식 운하에 의 해서 몽 땅 끊어지면 일본의 지각변동이 어떻게 일어 날 지는 불을 보듯이 뻔히 상상되고 있다.
그리고 지리산의 정기를 이룬 대 혈맥이 끊어진 우리 조상님의 후예는 엄청난 비극이 초래 될 수도 있다.
대운하로 산의 정기가 끊어 질 수 있는 지상 최대의 비극이 우려되었지만 마침 현 정부의 대운하 공식 취소 발표에 감사와 안도의 찬사를 보낸다.
정기보 취재기자
2008-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