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저 마다 배려하라 한다
- 산에는 기승전결의 엄격함이 있다
북한산(해발 836,5미터)
차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어린 아이가 물에 뛰어 드는 것을 막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이다.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보고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이 그렇다.
산에서 그런 마음이 일어난다.
산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
그로 인하여 그 번잡한 서울의 도심이 여유로울 수 있다.
북한산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로 인하여 사람들의 이상향이 가까이에 있다.
북한산의 봉우리들은 점대칭이다.
그로 인하여 산은 부동한다.
한적한 길 접어든다.
구기동매표소에서 시골의 한가를 본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어디로 피신이라도 한 듯,
움직이는 것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과 나뭇잎뿐이다.
굴에서 생명이 기원하였을 것이다.
그 생명은 산을 터전으로 하여 번창을 이루었을 것이다.
굴은 어둠이며 태고이고 산은 활동이며 태고이기 때문이다.
목정굴을 지나친다.
상수리나무들이 그 입구를 호위하고 있는 듯하다.
소나무의 푸르름을 자세히 쳐다보니 그것은 이미 맑음이다.
층계를 본다.
바위와 소나무의 층계,
흙과 굴참나무의 층계,
북한산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 바위와 소나무의 조화이다.
그 오묘한 조화를 대동하고서 먼저 나타난 것이 향로봉이다.
향로봉
산에 우뚝한 바위에서 연역해낸 것이 향로인지,
향로의 모양새를 산의 바위에 같다 부친 것인지 구분이 안 간다.
향로봉은 그렇게 이름에 걸맞다.
봉우리 전체가 하나의 바위이다.
바위위에 자란 소나무가 그늘을 선사하고 있다.
거친 호흡을 고르기도 전에 바위를 두리번거려 본다.
조금이라도 금이 날새라 완만하게 다 보듬은 형상에 감탄한다.
향로봉의 소나무가 산을 징표하고 있다.
바위는 하늘로 비상을 하는데,
소나무들은 시원한 그림자를 만들어 인간에게 다가와 있다.
비봉
북한산의 펼쳐진 바위들을 매듭으로 묶을 수 있다면,
비봉은 역발산의 힘으로 그 매듭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손잡이 부분이 될 것이다.
그 형상이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이라 비봉이 된다.
그 순서의 배열이 영어의 에이(A) 다음의 비(B)라서 비봉이라 한다.
너무나 절경이라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비봉이라 한다.
봉우리의 안온한 정상에 세워진 진흥왕순수비에서 이름을 따 비봉이라 한다.
그 함의들 중에서 비석에서 비봉의 이름을 정한다.
비봉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전경이 좁다.
비봉에서 연상해내는 세월은 천년인데,
비봉아래의 최첨단을 구가하는 서울이 그렇게 협소한 것이다.

▲ 출처:파란 북한산자료사진(월드편집팀)
사모바위
자신을 바치는 몸체보다 더 큰 형상이다.
그 형상으로 보면 네(사)모바위이다.
산에서 인류가 기원하는 것이라면,
어머니에서 인간은 기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없다면 세상도 없는 것이다.
내리사랑이라 한다.
사랑은 교감에서 아름다운 것일진 대,
어머니의 사랑은 내리기만 하는 일방적 사랑이다.
사모바위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본다.
자식을 위해서 흘렀을 눈물은 장강이 된다.
자신의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처럼 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이기에 예쁘지 않아도,
나의 어머니이기에 지적이지 않아도,
나의 어머니이기에 가난하여도,
그런 마음이 바로 인간이면 차마 할 수 없는 마음인 것이다.
그 애절한 마음이 응고되어 사모바위가 되었다.
사모바위 지나치며 바라보는 승가봉과 문수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정하다.
승가봉과 문수봉
스님의 모자를 닮은 승가봉,
그 뒤에서 문수봉이 보살의 눈부아림으로 위엄하다.
걸음은 역사를 세우는 역정이 된다.
다짐이었을 것이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한 조국을 위하여 처절한 작별로서 가족과 고향을 떠나온 젊은
초병들의 고된 다짐을 듣는다.
승가봉과 문수봉은 그 자체가 적을 퇴치하는 천혜의 요세이다.
청수동암문에서 역사를 떠올려 본다.
암문은 성안에서 밖으로 통하는 비상통로이다.
성벽이 그렇게 띠를 두르고 있다.
흙과 굴참나무의 층계에 접어든다.
보국문에서 정릉으로 난 길을 내려다본다.
산의 북면이 바위로 그 성분을 정하고 있다면,
산의 남면은 흙으로 그 성분을 정하고 있다.
성벽아래의 흙길을 맨발로 달렸을 조선의 병사들의 숨결을 듣는다.
연락을 위하여 이 길을 온 종일 뛰어 다녔을 것이다.
무명이라 하여 그 세월이 무의미하다 말하지 못하리라.
너무나 오래 전이라 하여 그 세월이 고귀하지 못하다 말하지 못하리라.
나뭇잎이 햇살을 가린다.
북한산에서는 나뭇잎이 비를 가린다.
땀에 젖은 몸에 비가 내린다.
나누어야 하는 것이 어찌 물질뿐이겠는가.
배려하여야 하는 것이 어찌 이웃뿐이겠는가.
마음이 편안하면 사려가 깊은 것이다.
마음이 화평하면 배려가 깊은 것이다.
이 또한 인간이 차마 할 수 없는 마음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용암봉에서 비를 흠씬 맞는다.
산에는 허투루한 것이 없는 것이다.
산에는 기승전결의 엄격함이 있는 것이다.
그 결의 부분에 최고높이의 백운대가 눈앞이다.
백운대는 노적봉과 인수봉을 거느리고 있다.
노적봉과 인수봉은 또한 백운대를 거느리고 있다.
거느린 듯하지만 그렇게 저 마다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동행이 또한 그러하리라.
아쉬워라!
눈앞에서 작별한다.
백운대는 다음 산행의 여분으로 남긴다.
여분의 미련보다는 더 빨리 되돌아오는 세속에 아쉽다.
북새통으로 변한 도선사에 당도한다.
산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인심이 있다.
그 인심이 산행의 비워감에 아무런 영향력도 발하지 못할 것이다.
당분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