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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08-19 10: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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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정’ 세대로 통하는 40세 이상 직장인의 처진 어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던 노장 야구선수.

프로데뷔전 완봉승, 21년간 매년 143이닝을 소화해야만 달성가능한 3003이닝 투구,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210승, 탈삼진 2048개, 34세 최고령 노히트노런 등 기록의 사나이로 통했던 좌완 투수.

21년간의 프로생활, 21번 등번호, 월급날 21일 등 숫자 21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태어난 불새출의 스타.

이 같은 수식어는 바로 한화이글스 송진우(43ㆍ사진)의 프로 선수생활 21년사를 대변한다.

한화이글스 송진우가 18일 유성 리베라호텔에서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21년간의 파란만장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그의 야구인생은 충북 증평초와 세광중, 세광고, 동국대를 거치며, 꾸준한 활약과 함께 프로무대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는 세광고 재학 시절인 1982~1983년 대붕기 준우승과 황금사자기 우승, 대통령기 준우승의 주역으로 맹활약했고, 동국대 재학 중에는 88 서울올림픽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1989년 명장 김영덕과 함께 빙그레이글스에서 프로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그 해 4월12일 롯데와 프로데뷔전을 완봉승(역대 5번째)으로 장식하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이후 21년간 데뷔전 완봉승이 나오지않은 점을 감안하면, 당시 승리 의미는 실로 대단했다. 또한 91년까지 송진우보다 나은 방어율을 보인 선수는 오직 선동열 하나였다.

현재의 영광을 얻기까지 시련도 만만치않았다. 92년 다승왕과 구원왕을 동시에 차지했지만, 당시 타이틀 경쟁에 나섰던 해태 이강철과 정면 승부를 피했다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김영덕 감독의 배려로 등판일정에 따라 등판했던 만큼, 선수 본인 입장으로서 억울할만도 한 순간이었다.

97년, 98년에는 6승, 방어율 4점대로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은퇴를 심각히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99시즌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4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 롯데 전에서 감격적인 역전승의 순간 승리투수로 활약하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다시금 맛봤다.

또 다시 10년이 흐른 2009년, 그는 마지막 도전에 나섰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올 시즌 중간계투로 나서다 4월26일 이후 2군에 합류한 뒤 1군에 부름을 받지 못하고, 100일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영욕의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내년 시즌 일본으로 지도자 연수를 꿈꾸며, 새로운 꿈을 향한 힘찬 도전에 나선다.

송진우는 “선동열과 최동원 선배같은 특급 투수는 아니었지만, 팬들에게 꾸준한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며 “그동안 성원해주신 모든 팬들에게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는 멘트로 선수생활 중 마지막 인터뷰를 마무리했다./이희택 기자 nature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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