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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1-21 22:40:10
  • 수정 2022-02-05 19: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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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득환 논설위원


엄니의 손 맛 – 감칠맛의 배추겉절이

 


 어린 나이에 엄니 곁을 떠나 생활을 한 나는 늘 마음 한 구석에 그 무엇 하나를 쌓고 있었다.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 무엇 하나를 뒤돌아 되새겨 쫒아보니, 되새길수록 짙어지지만 채워지지 않는 마음 속에서 이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런데 그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은 마치 짙은 봄 날 이는 아지랑이 같아서 채우려 다가서면 이내 더 짙어지다 한 순간 사라져 버린다.


 그럴 때면, 늘 내 속이 새까맣게 탄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속에 이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은 바로 엄니의 손 맛이다. 그 엄니의 손맛은 엄니와 나 사이에 탯줄로 연결되어 쌓인 그 무엇과도 같을 것일 게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알게 모르게 엄니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 지를 배운다. 그 배움의 이유기를 지나 본격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밥과 함께 맛을 자극하는 반찬이라는 것을 함께 먹는다. 이 때 비로소 우리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등의 맛을 본격 구분하여 느껴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단, 짠, 신, 쓴맛의 그 맛을 알기시작하면서부터 그 때부터 음식을 가려 먹는다. 이때부터 식습관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 식습관을 결정하는 것이 엄니의 손맛이다. 그 식습관 때문에 내가 성인이 된 후 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앞두고 먹어도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바로 성장기 엄니의 손맛에 길들여진 나의 식습관 탓에 오는 것이다.


 나만 일까. 결혼을 하여 30년을 산 지금 쯤 나는, 아내가 해주는 음식에 길들여 질만도 한 데, 영 그렇지가 않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엄니와 강한 손맛에 길들여진 나의 식습관 탓일 게다. 인이 박힌다 했던가. 유전적 본능처럼 엄마의 손맛에 길들려진 나의 그 익숙한 입맛 탓에 아내가 차려주는 그 진수성찬들조차도 내 마음속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엄니의 손맛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아니 왜 나는 아내가 해 주는 음식 맛에 길들여지지 않는가.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점들이 있을 게다. 우선은 내 엄니와 아내의 엄니가 다른 탓이다. 또 다른 점으로는 아내와 내가 성장기에 살던 지역적 차이이다. 


이로 인해 식재료에 차이가 있고, 지역에 따라 다른 식 문화의 차이도 그 한 요인일 게다. 그런데 그 다른 식재료 중 으뜸은 단연 물이고, 그 물에도 맛의 차이가 난다. 내가 유년기를 보낸 곳은 옥계라는 산골인데, 그곳은 합천 해인사가 자리하고 있는 가야산의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에 비해 아내가 나고 자란 곳은 송악이라는 곳인데, 그곳은 바닷가이다.

 

 옥계의 물맛은 맑은 가을날 열린 창공 같다. 그래서 옥계(玉溪)다. 그런데 아내가 나고 자란 송악(松嶽)은 그 이름과는 달리 바닷가여서 그곳의 물에는 염기가 배어 있다. 그 탓에 송악의 물맛은 찝찌름하다. 아내는 그 찝찌름한 물맛에 길들여져 있고, 나는 창공에 길들여져 있다. 


자연히 아내가 하는 요리에는 기본적으로 찝찌름한 그 맛이 베인다. 그런데 아내의 요리가 내는 그 맛은 내게는 익숙해지지 않고, 혀가 먼저 거부를 한다. 그렇다고 아내를 앞두고, 그런 내색을 할 수 없다. 즉, 아내가 내어주는 그 음식의 맛을 평하며, 투정을 부리는 것이야말로 간 큰 남자의 호사인 탓이다. 이 땅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남자가 있기는 한가. 

 

 사정이 그런데도 아내가 내는 그 맛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은 바로 어릴 때 길들여진 혀에 익어버린 엄마의 손맛을 내가 떨치지 못한 까닭이다. 아내와 함께 고향에 갈 일이 있어 가면, 엄마가 내어주는 그 음식을 언제나 맛있게 먹는 나를 보고 아내가 말을 하곤 한다.


 “당신은 당신 고향 집에만 가면, 무엇이든 게걸스레 먹던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어머니가 그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며느리가 밥도 안 해주는 줄 알 것 아니야. 사람 민망하게 당신은 도대체 왜 그래.”

 아내의 말에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불편한 표정을 짓고 만다.

 

 내가 고향엘 갈 적마다 엄니가 가장 쉽게 내주는 음식 중의 하나가 바로 배추겉절이다. 엄니는 집 앞 텃밭에서 기르는 여린 배추 몇 포기를 뿌리 채 뽑아 뿌리에 묻은 흙을 무릎 나온 바지에 이리저리 비벼 턴다. 그리고는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들어 마당 한쪽에 있는 우물에서 물을 한 바가지 길러 휘-휘둘러 배추를 씻는다. 


그리고는 그것을 들고 이내 부엌에 들어선다. 부엌에 들어선 엄니는 그 배추에 굵은 소금 슬슬 흩뿌려 살짝 절인 후 참기름 한두 방울에 붉어 맑은 고춧가루 한 두 숟가락 슬슬 덧 뿌려 사그락사그락 버무리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을 내는 배추겉절이가 된다. 


이 배추겉절이에는 엄니의 깊은 손맛이 깃들어 있고, 나는 그 엄니의 손맛에 길들여져 있다. 남들 입에는 그 맛이 어떨지 알 수 없지만, 내 입에는 그 만한 음식이 또 없다. 배추겉절이 한 사발이면, 밥 한 그릇 후딱 해치우고는 아내의 눈 흘김과 뱃살 더느는 것이 두려워 아쉬운 숟가락을 늘 놓곤 했다.

 

 그 손맛을 내던 엄니가 내 곁을 떠나셨다. 엄니가 떠나신 그 길은 멀고도 험하며, 내 곁으로 결코 다시는 뒤돌아올 수 없는 먼 곳을 향해 나 있는 아스라한 길이다. 그 아스라한 길 끝에 아버지가 서 계실 거다. 엄마보다 7년 7일 먼저 그 아스라한 길에 나섰던 아버지셨다.


 아버지는 아마 은하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저 별들 중 어느 하나에 촛불을 들고 서서 엄니를 영접하기 위해 7년 7개월을 애타게 기다리시고 계셨을 테다. 엄니는 아버지가 들고 서서 빛을 발하는 그 빛을 향해 한 걸음 또 한 걸음 느린 걸음을 옮기고 또 옮겨 내가 알 수 없는 그 어느 날 기어이 아버지 곁에 다다르실 게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즈음이면 아버지 역시 아들인 나처럼 엄마의 손 맛 배인 그 배추겉절이 맛만은 잊지 않고 계셨을 게다. 나도 아버지의 나이가 되면, 엄니의 손맛과 작별을 하고 아내의 손맛에 길들여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삭아삭 씹혀 해맑고 칼칼하며 혀끝을 간지럽히듯 감도는 참기름의 고소함이 입안 가득히 번지는 배추겉절이의 감칠맛, 엄니 손이 내는 그 맛을 이젠 혀끝에서 떨쳐내어 지워내야 한다. 아스라이 먼 길을 엄니가 떠난 까닭이기도 하고, 아내의 손맛을 혀에 익혀 아내로부터 사랑받는 남편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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