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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13 08:51:24
  • 수정 2020-05-17 21: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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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젓 장수


 내 유년기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져 결코 지워지지 않는, 늘 살아 꿈실대는 모습을 한 한 분이 있다. 어린 내 눈에 늙어 볼품없던 모습으로 새우젓을 지게에 지고 이 마을 저 마을로 팔러 다니던 새우젓 장수다.

 

 내가 그 분을 만나는 곳은 늘 이른 아침 등교 길에서 였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마을로부터 10리가량 떨어져 있고, 학교 가는 그 길에는 큰 개울도 하나 건너야 했다. 그런데 그 늙은 새우젓 장수를 만나는 곳이 늘 그 너른 개울에서다. 


지금은 그 개울이 건천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그 시절에 그 개울은 많은 수량의 물을 품고 있었고, 그 개울을 건너자면 총총총 놓인 징검다리를 한 참 동안이나 통통통 뛰어 건너야 했다. 그런데 그 징검다리 가운데서 늘 새우젓 장수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새우젓 장수는 지게에 새우젓 깡통을 지고 징검다리를 건넜는데, 우리가 징검다리를 통통통 뛰어 건널 때까지 무거워 어깨가 처졌는데도 고개를 갸웃 기우린 채 징검다리 가운데 서서 한 참을 기다려 주곤 했다. 그 새우젓 장수의 얼굴은 뾰족한 턱을 가져 삼각형을 닮았고, 머릿결은 반백으로 항시 짧게 깎은 상태였다. 


아이인 내 눈에도 그 분의 모습은 참으로 볼품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걸친 옷이라고 해야 헤진 삼배적삼에 삼베바지였다. (그 분이 입은 옷을 보더라도 어린 내가 그분을 만나는 철이 여름날임을 알 수 있을 게다.) 그런데도 그 분을 깔보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인근 마을에는 없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그 분의 아들이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다닌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 말이 늙어 볼품없는 그 분의 품격을 그만치 높여주고 있었다.

 

 물론 마을 아낙네들이 그분을 반기는 데는 그 소문 보다는 그 산골에까지 새우젓을 져 날라주는데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을 게다, 하얀 속살을 가진 새우젓은 여름 날 더위에 지친 산골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하는 으뜸 찬 중의 하나였다. 새우젓은 별다른 양념을 더 가미할 것도 없다. 


새우젓에 그저 고춧가루 한두 숟가락 흩고, 참기름 한두 방울 두르면, 그게 끝이다. 더위에 지친 여름날 물 말은 밥을 한 숟갈 떠서 젓가락으로 고춧가루와 참기름 두른 새우젓속의 하얀 새우 한두 마리 가려 얹어 입 속에 넣으면, 밥이 절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어린 나는 당시 그 새우젓의 맛을 알지 못했다. 


그저 짠맛에 얼굴을 찌푸리기 일쑤였고, 차라리 맨밥을 입속에 떠 넣고 물 한 숟가락 입에 퍼 넣은 것이 더 나았다. 그러던 내가 새우젓의 맛을 알게 된 것은 내 나이 쉰을 한참 넘긴 즈음이었다. 그 당시 아버지가 중환으로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찾는 것이 바로 그 새우젓이었다, 


다른 찬이 입에 맞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아버지는 아버지 장년 시절 드셨던 그 새우젓 맛에 대한 기억 되살아났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입맛을 먼저 다신 후에 붉은 듯 노란 새우젓 속의 새우 몇 마리를 젓가락으로 보석을 집듯 소중이 집은 후 하얀 쌀밥이 떠진 밥숟가락 위에 얹은 후 잠시 숨을 다시 가다듬은 후 입에 넣곤 하셨다.

 

 그 아버지 6주년 기일이 지난 4월 7일로 지나갔지만, 서울에 사는 나는 코로나바이러스19 감염증 사태로 인해 아버지가 늘 머물던 고향엘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5월 첫 주 모처럼 맞은 연휴에 어머님 계신 고향을 찾았고, 아버지 산소에 먼저 올라 인사를 드렸다. 평소 나를 대하던 아버지의 근심 어린 모습이 여전히 내 가슴을 쳤지만, 달리 도리가 없어서 편히 계시라고 주문만 외운 채 산소를 내렸다.

 

 낡아 쓰러질 듯 서 있는 집에 들어서자 이제는 늙어 몸놀림이 불편하신 어머님이 버선발로 나를 맞는다. 구순을 내일 지나 모래로 맞을 지경이니 어머님의 몸이 그만한 것도 어머니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내겐 더 큰 축복이다 싶다. 그런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굽은 허리를 펴고 서서 내게 먼저 밥을 먹었는지 묻고, 새우젓 묻힌 것 도 있고 하니 밥을 먹으라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새우젓을 찾던 병환 중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렸다. 당시 몹시 불편한 몸이셨을 텐데, 커다란 내색 없었던 내 아버지, 새우젓이 올려 진 밥숟가락을 드시던 그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내 눈에 눈물이 먼저 괸다.


 어머니의 새우젓이라는 그 말에 나는 때 이른 저녁 밥상 앞에 앉았다. 나는 새우젓을 입에 넣으며, ‘아! 이 맛이었구나.’를 속으로 외쳤다. 새우젓이 아버지의 입맛을 먼저 돌게 했던 것처럼 짭짤한 새우젓이 내 입에도 침을 먼저 고이게 했다. 그리고 새우젓을 입에 넣기도 전에 입맛을 먼저 다시게 했다. 


입맛이 없었을 아버지가 새우젓을 앞에 놓고 입맛을 먼저 다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도 이로써 새우젓의 맛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입맛이 당기지 않는 여름날에는 고춧가루에 참기름을 살짝 두른 새우젓을 밥상머리에 두어보라. 그 새우젓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먼저 고이고 이내 입맛을 다셔 돌게 할 것이다.

 

 어머님을 뒤로 하고 서울로 뒤돌아 오는 그 길은 예와 같이 고행의 길이었다. 나도 그 새 피곤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3시간 반이 걸리던 그 길을 장장 8시간이나 걸려 집에 닿았다. 그날 밤은 그냥 쓰러지다시피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다. 그리고 세면대 앞에 섰다. 내 앞 거울 속에 낮이 익은 새우젓 장수가 서 있다. 머리칼은 반백이고, 앞니 하나가 툭 불거져 앞으로 튀어 나온 채 제자릴 잃은 모양을 하고 있다. 턱은 뾰족하고, 울대를 지켜선 목의 두 힘줄이 튀어나와 있고 얼굴은 삼각형으로 영락없는 새우젓 장수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 멍하니 서 있는 나를 일깨운 것은 독한 아내의 익숙한 목소리였다.

 “얼른 씻고 나오지 뭣 하는 거야!” (2020.5. 정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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