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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11-09 21: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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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득환 대기자/논설위원


정의 옹호


정의란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올바른 사회적 행동의 준거이다. 자연히 그 대상은 사회적 인간이다. 사회란 인간 어울림의 장을 말하는 데, 인간은 그 속에 처진 유무형의 모든 질서를 지키며, 살아내야 한다. 이 때문에 산다는 것 특히 바르게 살아내기란, 보통 사람에게도 실로 어렵다.


땅이 울퉁불퉁하듯 사람들의 삶 역시 굴곡져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사회 속에서 나고, 자란다. 이 때문에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적 품성을 성장 과정에서 체득해 몸에 쌓기 마련이다. 이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덕목을 실천하며, 다들 산다.


그런데 간혹 이 같은 사회적 삶의 준거를 망각한 채, 독불장군식의 삶을 영위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이들을 일러 우리는, 반사회적 인간이라고 부른다.


반사회적 인간들에게 정의란 돈에 기댄 오로지 나의 입장을 두둔하는 나의 정의다. 근간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며 논란을 부른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갑질이나 한국미래기술()의 양진호 회장의 갑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실 이 같은 개인의 갑질은 개인의 우월주의가 빚는 참극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세태가 반영되어 있다. 소위 미투(Me To) 사건이 들불처럼 사회 내부에 번질 수 있었던 데도 더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사회혁명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나는 앞서 정의를 올바른 사회적 행동의 준거라고 말을 했는데, 이는 좁은 의미의 해석이다. 넓게 봐서 정의란 구획되어 있지 않은 논밭과 같다. 다시 말해서 너와 내가 말하는 정의가 마치 같은 것 같은데 실제로 맞닿아 부딪히면, 서로 다르다. 자연히 정의란 각자의 이념 성향에 따라 그 내용 또한 달라진다.


한때 바람이 일 듯 우리 사회에 정의 바람이 크게 분 적이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발매되면서다.


이 책에서 센델 교수는 정의를 행복, 자유, 미덕이라는 말로 압축했다. , 정의가 사회구성원의 행복한 삶을 담보하고,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하며, 미덕의 발현으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다 함께 정의를 옹호해야 할 이유도 바로 샌델 교수가 지적한 그 지점에 있다. 정의란 사회를 사람들로 하여 어울려 사는 장이 되도록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 거론한 것처럼 너와 나의 정의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 차이를 극복하는 일 또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 같이 우리에게는 어렵다. 특히, 각자가 서로 다른 정의를 옹호하다가 보면, 투쟁이라는 단계로 나아가고, 종래 서로가 영영 함께할 수 없는 죽음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반도 분단의 비극은 그것을 너무나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 각기 추구하는 사회 정의의 준거가 명확히 달랐고, 남과 북은 각기 다른 정의를 옹호하기 위해 동족상잔의 비극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70, 그 같은 갈등의 시기를 너머 지금 남과 북은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각기 노력하고 있다.


그 준거는 역시 정의다. , 남과 북이 함께 하려면, 사회적 준거로서의 정의의 대통합이 우선이다.

이를 통해 남과 북은 같은 정의를 추구하는 한편 그것을 옹호해야 한다.


이때 비로소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155마일 철책선이 걷히고, 같은 정의의 신발을 신은 남과 북의 시민들이 창공을 나는 학처럼 마음 편히 남북을 상호 오가게 될 것이다. 같은 정의를 옹호할 때, 너와 나의 도덕적 덕목이 같아지는 법인 셈이다.

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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