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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10-28 1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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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대구대학교 법과대학교수
문경 사불산(해발 813미터)

단풍이 곱다.
사람의 마음이 그랬으면 좋겠다.

은행잎이 노랗다.
종횡무진의 세찬 바람을 견딘 결과일 것이다.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결실이 끝나 들판이 텅비어 있다.
그래서 마땅히 더 비추어야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고마운 햇살이다.

내리는 것은 숙연하다.
함락당하여 국기를 내려도 그렇다.
파장을 하고 상점문을 내려도 그렇다.
잠들기 위하여 창문의 휘장을 내려도 그렇다.

올리는 것은 겸허하다.
결실이 사람을 겸허하게 만들 듯이,
산정상으로 향하는 마음이 그렇다.
산에는 내림이 있으며,
산에는 오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숙연함과 겸허함이 공존하는 것이다.

일상의 기쁨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적어야 한다.
마음의 기쁨은
가지려는 것보다 비우려는 것이 더 커야 한다.
마음의 기쁨이 산에 오르려는 이유이다.

사불산이 적요하다.
사불산 산행에는 항상 귀한 동행이 있다.
여름엔 비가 동행을 자처한다.
가을엔 바람이 동행을 이끈다.
적요에서 깨어난 사불산이 신나한다.
너무 오래 망각하고 있었다.
함께하는 산행을 태고처럼 잊고 있었다.

윤필암의 정적이 정갈하다.
길목을 휘이 접어들어 사불바위로 향한다.
미소의 의미를 안 염화처럼,
보이지 않는 마음을 알아 낸듯,
눈짓만으로 향하는 산길을 걷는다.

자연의 품이 운치있다.
사람이 그 품을 닮을 수 있다면 좋겠다.
사불산이 그 수려한 품을 내준다.
바위가 말을 한다.
우두커니 서서 이정표역할을 하고 있다.

사불바위는 전설이다.
태고의 일이라 그 시작을 알 수가 없다.
너무 까마득하여 알려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그 언젠가의 일이라 그 귀환도 알 수 없다.
사불바위는 메아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불바위를 마주한다.
장엄하여 눈을 바로 들지 못한다.
알 수 없는 전설을 청음한다.

소란이 넘친다.
사불바위가 오늘 산행의 집결지이다.
소란조차도 소용없다.
바라다보는 사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품어주는 사방이 너무 커서 요량도 할 수 없다.

바위가 하얗다.
바위는 더 숨길 것이 없다는 듯,
바위는 세월을 체념한 듯,
그 큰 둘레를 하얗게 내보이고 있다.
단풍의 붉음때문에 들어나는 모습이다.
마치 날씨가 차거워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 푸르름을 내보이는 소나무같다.

소나무가 사불산의 대표선수이다.
그 크기가 창대하다.
그 굵기가 고목같다.
그 형체가 오색같다.
누가 소나무를 이야기 하면 주저없이 사불산을 말할 것이다.
송진채취의 상처를 안은 소나무이다.
아름다움 아래에 각인된 세월의 흔적이다.

길은 은유이다.
좋은 것을 이끄는 것이기 때문이다.
'길하다'라고 말한다.
길은 통함이다.
길이 통하는 곳에 도가 통하기 때문이다.
산길에는 길함이 살아있고 통함이 살아 숨쉬는 것이다.
터덕터덕 산길을 걷는다.

호흡이 숨차다.
통바위 하나를 넘었기 때문이다.
활엽수가 대칭의 터널을 만들고 있다.
옛 사연이 된 사랑이 사무치는 듯,
옛 사연이 된 애닲음이 저미어 오는 듯,
옛 사연이 된 작별이 눈물겨운 듯,
활엽수터널 저 곳에서 무한의 감상이 일어난다.
호흡이 가파르지 않았더라면 울고 말았을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나무터널이 눈앞에 펼쳐 있기 때문이다.

삼거리에는 다른 것이 같은 것이 된다.
삼거리에는 같은 것이 다른 것이 된다.
방향을 찾아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방향을 찾아 떠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능선의 삼거리에서 묘적암으로 방향타를 정한다.

활처럼 계곡을 안고 있다.
그 옛날에는 너럭바위 어디쯤에 숨어서 활을 겨누었을 것이다.
누굴 헤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평바위에서 내려다 본다.
눈으로 내려다 보는데,
마음이 앞서서 동요하고 있다.
산 모양새가 경관이다.
산의 조화가 절경이다.

비가 신호를 보낸다.
아직 내려서야 하는 길이 멀다.
수줍은 듯
비가 굴참나무를 툭툭 친다.
부끄러운 듯
바위 위를 툭툭 튀긴다.

사불산의 바위는 보여줄 것이 많다.
사람을 잡아두고서라도 그러고 싶은 것이다.
비에 젖은 바위를 넘는다.
잡아주는 손이 있어 바위를 넘는다.
잡아주는 손이 있어 체온을 나눈다.
잡아주는 손이 있어 정감이 쌓인다.
비에 젖은 바위가 그렇게 공조하고 있다.

계곡을 내려다 본다.
가까이 것에서 먼 곳으로,
저 먼 곳에서 산의 초입을 연상한다.
사불바위가 산넘어 저기이다.
길이 있다면 넘지 못할 곳이 어디며,
길이 있다면 다가 가지 못할 곳이 어디인가.

비가 세차다.
마음의 단합이 공고하다.
나무가 그 큰 키를 내세워 먼저 젖는다.
물기에 젖은 단풍이 눈이 시리도록 곱다.
물기에 젖어 붉은 단풍이 눈에 어린다.
고운 것이 어디 단풍뿐이랴.
어린 것이 어디 단풍뿐이랴.
고운 것은 함께 한 마음이었다.
어린 것은 함께 한 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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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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