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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8-15 11:34:10
  • 수정 2020-08-15 22: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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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애국자의 핏줄 

                                                                                                  구담(龜潭) 정 기 보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이하여 아침 일찍이 대문에 태극기를 걸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가슴에 담으며 해마다 잊을 수 없는 가문의 내력을 되 살려 회상해본다.

애국자의 핏줄이 후세에 길이길이 이어가기를 다짐 했던 마음이 어느 새에 황혼기가 되었다.

1800년 말에서 1900년도 초 그 시절 증조부님께서는 울산의 관아에서 수거한 양곡을 저장했다가 선박으로 한양까지 운송하는 정 찬봉 어른으로 알려졌다.


양곡곡창의 곡물을 한일합병으로 어수선한 국정을 보다 못해 민란이 일어나고 선비들이 주축이 된 민란에 창고 곡물이 털어나가고 어느 때는 왜군들이 털어갔는데 증조부님께서는 왜군이 털어간 병사부대 곡창을 야밤중에 나전들과 합께 잠입하여 불을 찔렀는데 이를 추적하여 잡으러 온다는 소문을 듣고 가족을 되리고 경북 건천(옛 이름. 선동)의 정씨 문중에 숨어 살았으나 어찌 알고 추적한다는 소문을 듣고 청송군 보현산 깊은 산골짝으로 도피 하여 종적을 감추며 살아오셨다.


그런 연고로 필자의 사촌들은 문맹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필자의 아버님께서는 4남 2녀 형제 중 3째로서 총명하셨다고 했는데 일찍이 도시로 나와서 철도공무원이 되셨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증조부님의 애국충정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태극기를 필자에게 선물하셨는데 필자는 어린 시절 부터 그 태극기를 곱게 접어서 속옷 배에 두르기를 초 중 고 일반사회직장 생활 할 때까지 수차 갈아가며 버릇이 되어 차고 있었으나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면서 옷장에 보관하였지만 너무 낡고 헐어서 소실되었다.

아버님 살아생전에 울산의 대외면(대현) 일대의 고조부모님의 산소를 찾으려고 무척 애를 섰으나 찾지를 못했다


울산의 S.K 석유화학이 들어 있는 공장부지 일대로 만 짐작할 뿐이다.

필자는 초등교 시절부터 글쓰기를 즐겼는데 어린 시절 동시를 짓고 다락에 있는 고무다랑이에 두곤 했는데 많이 쌓이니 묶은 냄새가 진동하여 어머님께서 필자 몰래 버렸던 아픔이 가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등학교 그 시절 자유당의 독재 타도를 왜치든 4. 19 학생혁명을 잊을 수가 없다.

필자는 동문과 함께 구호삐라를 왜치고 뿌리던 기억이 황혼기가 되어도 잊을 수 가없다.

필자의 동료 강 수 영 열사는 자유당 정권 총 난사에 희생되었다.


중. 고등학교를 함께 다니던 친구를 잊을 수 없어 해마다 4.19 그날이 되면 모교(경남공고)교정 행사마다 4. 19 창작 시(詩)를 낭송하고 있다.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이하여 증조부님의 나라사랑 애국충정을 휘날리는 태극기 아래 애국자의 핏줄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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