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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12-30 14: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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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흘산(주봉-1079미터)


색(色)으로 말한다.
봄의 산이 그렇다.
나무의 산이 또한 그렇다.
색으로 말하는 주흘산(영봉)이다.
세(勢)로 말한다.
겨울의 산이 그렇다.
바위의 산이 또한 그렇다.
세로 말하는 주흘산(주봉)이다.

가늠한다.
오름이 완만하다.
가늠하는 것이 빗나간다.
냉기속의 돌길이 거칠다.
나무들이 차가움 앞에 뿌리를 들어내고 있다.
밖으로 삐져나온 촉수같다.
더듬이처럼 온도를 측정하고 있는 듯하다.
꽁꽁 언 흙이 비늘처럼 나무를 에워싸고 있다.
에움을 뚫고서 나무가 따뜻하다.

비스듬하다.
햇살이 완곡하다.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내리비친다.
햇살이 순수하다.
마치 수줍어서 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소녀같다.
햇살이 응달을 찾아간다.
바위위에 내리는 햇살이 포시랍다.
바위가 포효하는 기세이다.
바위가 햇살을 즐기느라 잠잠하다.
햇살의 바위덕에 산이 따뜻하다.

나무들의 아량을 본다.
행여 빛이 들지 않을까 가지조차 앙상하다.
행여 빛이 들지 않을까 가지조차 연약하다.
하늘을 가리던 여름시간이 저 만치이다.
하늘을 비키는 겨울시간이 이 만치이다.

하늘에 맞닿은 가지이다.
지상에 쿵쿵 울리는 발자국소리이다.
흔들리는 가지이다.
나무가 개의치 않는다.
아량이 있기 때문이다.
아량의 나무덕에 땅이 따뜻하다.

궁리를 하여 본다.
길이 낙엽 속에 감추어져 있다.
길을 헤치고 능선으로 오르려는 궁리이다.
여궁폭포에 이른다.
여름의 시원함을 느껴본다.
겨울의 온화함을 느껴본다.
의미를 유추해본다.
돌아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쏟아 내리는 폭포가 말을 할리가 없다.

폭포가 수신호를 보낸다.
겨울에도 깨어 있으라 한다.
산이 요동하고 있는 이유이다.
여궁폭포 앞을 건너는 아치형다리가 장식같다.
광한루의 다리같다.
아치형다리위에서 궁리를 내려놓는다.
샛길을 감행하지 않는다.
가파른 돌길로 발을 옮긴다.
그 누군가가 걸었기에 답습의 산길이다.

무슨 사연이었을까.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일까.
혜국사가 그리도 깊이 숨어 있다.
혜국사에서 펼친 염원이 그 무엇이었을까.

사방이 적요하다.
길 하나로 소통하는 곳이다.
길을 닫으면 소통이 끝나는 깊은 골이다.
나무들의 흔들림만이 적요를 깬다.
혜국사에서 산행의 걸음을 재촉한다.
끝내 사연을 알 수가 없다.
끝내 사연을 들을 수가 없다.
산이 그렇게 깊은 것이다.

안적암에 이른다.
‘세상을 안적이 없다’는 듯 숨어있다.
세월에 무심하다.
세상에 초연하다.
우람한 소나무만이 터 넓은 평지를 지키고 있다.
넓은 평지를 소나무에 넘겨주고서 숨어있는 안적암이다.
오솔길이다.
안적암을 묻는 스님을 만난다.
참나무이다.
오르는 것이 힘들어 보이지 않는 스님의 걸음이다.

산이 낙엽색이다.
낙엽이 산이다.
굴참나무가 연출한 향연이다.
굴참나무가 산을 이분하고 있다.
영역을 경계하듯이,
소나무의 군락이 끝나는 곳에 굴참나무가 무성하다.
굴참나무가 소나무위의 땅에 자라고 있다.
굴참나무에 맞닿은 능선에 오른다.
능선에서 사방이 펼쳐진다.
사방으로 보낸 산의 경비병을 만난다.

산이 꽁꽁 얼었다.
홀로가 아니라 통체로 얼었다.
거대한 빙판이다.
새하얀 밸설이다.
주흘산이 빙판을 경비병으로 내세우고 있다.
어즈버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나무를 잡아본다.
미끄럼을 이기는 지혜이다.
나무가 고마운 것이다.
나무가 겨울을 고마워한다.
나무가 다감한 것이다.
차가운 얼음도 훼방하지 못하는 정감이다.

세찬 바람이 윙윙 분다.
바람을 헤치고 산새가 날아오른다.
연약한 날개에서 역동력을 본다.
창공의 바람이 매몰차다.
바람보다도 날개짓이 더 억세기 때문이다.
날개짓이 산을 위로 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봉이 묵묵하다.
빙판을 헤치고 주흘의 주봉에 올라 선다.

“주흘의 정상은 원래 영봉(해발 1106미터)이지만,
그 산세가 더 장엄한 주봉(해발 1079미터)이 정상의 대접을 받는다.”
주봉에 내리는 오후의 햇살이다.
수줍음을 떨친 햇살이다.
햇살이 주봉을 정면으로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비스듬하지 않아도 곳곳을 골고루 비추는 햇살이다.

앞에 보이는 조령산의 모습이 다정하다.
옆에 보이는 영봉의 형색이 위엄스럽다.
농부의 서래질로 만든 고랑같다.
주봉에서 시작한 고랑이다.
그 끝나는 곳의 문경시내가 정갈하다.

부채살을 만든 햇살이다.
부채살의 햇살이 주봉에 내린다.
부채살의 햇살이 시가지에도 내린다.
햇살의 부채를 접으면 한 해도 간다.
주봉에서 가는 해와 오는 해를 교차하고 있다.
2008년이 그렇게 종적을 감추고 있다.
2009년이 부채살처럼 펼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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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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