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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츠린 마음에 웃음을 퍼트려라
웃고 싶지만 웃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다. 의사가 그렇고 변호사가 그렇고 교수가 그렇고 교도소 재소자가 그렇다. 이들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웃고 싶지만 웃을 수 없어 힘들어 하는지 모른다. 아니 웃지 못하면서도 왜 웃지 못하는지 원인도 모른다는 편이 더 맞는 말이다.
지위가 높고 명예가 있으며 재물을 가진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웃지 않는다. 그들은 웃음을 싫어한다. 웃음은 패배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며 권위가 실추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니 웃을 수가 없다.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오너owner의 눈치를 살피느라 웃지 못한다. 회사가 잘 되면 표정관리를 해야 하고 회사가 어려우면 당연히 웃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실마리만 준비하면 함께 웃을 수 있다. 오히려 평소에 웃을 기회가 적기 때문에 더 잘 웃을 수 있다. 웃음특강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어색하게 웃다가 곧 웃음보가 터지고 나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웃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적어도 30명 중 1~2명은 꼭 나온다.
축구를 할 때 첫 골을 넣을 때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웃음도 마찬가지이다. 한번 웃음보가 터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아주 자연스럽게 웃게 된다. 어떻게 하면 한번이라도 웃음보를 터트리느냐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웃음은 자가발전을 해야 한다. 재미있는 얘기나 소재로 웃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외부의 충격에 의해 웃는 웃음은 일시적이 되고 만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웃음은 끝없이 터져 나오게 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웃음을 습관화 하기 위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웃음을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웃게 된다.
억지로라도 웃어보라. 웃고 싶어도 웃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라도 웃을 수 있다면 그런 행복이 따로 없다. 푸하하하하하하하^^
정은상 취재기자
201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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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효도는 웃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이 연속으로 모여있다. 이 중에서 어버이날은 유독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부모의 애틋한 사랑을 절절이 느끼게 되는 날이다.
끝없는 부모의 사랑에 보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웃음이다. 어린아이 때는 그 웃음으로 인해 부모는 아무리 어려운 일도 힘든 줄 모른다. 그러다가 차츰 자라가며 세상 물정에 물들어가면 우리는 어느새 웃음을 잃고 산다.
특히 사춘기를 지나며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부모를 향해 활짝 웃는 일이 없어진다. 밖에 나가면 생글생글 잘 웃는데 집 안에만 들어오면 얼굴이 굳어진다.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잘 하면서도 자식에게는 엄하게 하다 보니 가정에 웃음을 이어가기가 무척 어렵다.
나이 들어 따로 사는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하면서 웃어드리면 그렇게 좋아한다. 당연히 처음에는 피차 많이 어색하지만 한번 시작한 웃음효도를 지속하다 보면 부모님은 이제나 저제나 자식의 웃음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된다.
웃는다는 것은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다. 억만 금을 쌓고도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다면 전혀 행복하지 않다.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도 마음이 편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마음 편하게 하기에는 웃음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부모에게 하는 웃음효도를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배운다.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몸에 배어 나중에 고스란히 되받게 되는 것이다.
아직 웃음효도를 시작하지 않은 분들은 5월이 가기 전에 꼭 시작해 보기 바란다. 세월이 더 흘러 기회를 놓치면 부모님은 우리 곁에 머물지 않고 홀연히 떠나가신다. 그런 때가 오기 전에 실행에 옮겨보라. 놀라운 일이 발생할 것이다.
처음에는 부모님도 겸연쩍어 하실 게 뻔하지만 곧 습관이 되시면 전화 오기만 기다리시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효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웃음효도이다. 자녀가 웃으면 부모는 크게 웃는다. 지금 실행하라.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정은상 취재기자
201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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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환상곡
장용복 취재기자
201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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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완화 야누스의 두얼굴
미국은 지금 양적 완화 정책을 다시 할것인가를 두고 대립되는 두개의 견해가 존재 하는 상황이다. 달러를 시중에 더푸는 정책을 양적 완화 정책이라고 한다.
경기를 진작 하기위해서 달러를 더 풀것인가. 아니면 인플레를 우려해서 양적 완화정책을 억제할 것인가.
무엇이 미국의 정책으로 적합한지는 우리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양적 완화 정책을 하여 시중에 돈을 더 풀면 경기진작에는 크게 도움이 안되고 인플레 우려만 존재한다는 입장에서 양적 완화 정책에 신중을 기하자는 주장과 그반대의 주장이 대립중이다.
어느 정책 방향을 택하든지 간에 야누스같은 두얼굴이 존재한다.
미국민중에서는 2012년 여름, 이들 정책 방향을 놓고 상당히 의견이 대립 할 것이다.
수출입 연관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특히 이정책 방향에 임팩트를 받을 것이다. 아울러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이들 정책 방향을 주시하면서 경제 정책을 펴가야 할것이다.
( 김준성 직업 노동 연구원 원장 korealo@naver.com)
김준성 취재기자
201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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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웃어야 환자도 웃는다
흔히 의사는 잘 웃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의사 선생님 여러분들을 대상으로 웃음특강을 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 분들도 잘 웃었다. 아니 웃고 싶어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꽤 오랫동안 공부를 한다. 공부가 끝나도 인턴이나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며 다시 많은 공부를 하며 실전 경험을 쌓는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더욱 긴장하며 준비한다. 이렇게 해서 어렵게 의사가 되고 나면 많은 환자들의 병의 원인을 찾고 치료하는 일에 평생을 보낸다.
일부 생명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전문분야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사람의 생명과 관련 있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 속에 지낸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웃음과는 친해지기 어렵다.
하지만 의술도 서비스업에 해당하며 모든 환자나 그 가족들이 고객이기 때문에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져야 한다. 더구나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은 환자의 심정은 매우 나약해져 있기 때문에 의사의 말과 표정에 따라 일희일비하게 된다.
무엇보다 의사 자신에게도 웃음과 긍정적인 마인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의사가 행복하지 못하면 그의 가족이나 환자도 행복해지기 어렵다. 그래서 먼저 의사가 웃음으로 무장해야 한다.
의사가 웃으면 환자가 웃고 간호사도 웃고 직원도 웃고 간병인도 웃고 병원 전체가 웃는다. 의사의 웃음은 자신감의 표출로 직결된다. 환자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은 물리적인 치료 이상으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암 환우를 비롯한 중병환자의 경우는 치료보다 안정이 더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기적 같은 회복을 보이기도 한다.
온갖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가득한 병원에서 매일 근무하는 의사는 항상 신체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일부 종합병원을 제외하면 시설도 열악한 병원이 많다. 의사의 수입이 비교적 많다고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나 받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그렇지도 않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수입보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류에 대한 사랑을 앞세우며 실천하고 있다.
의사도 사람이지만 환자 앞에서는 약한 모습도 보일 수 없다. 그만큼 고독하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의사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환자들을 위해서 스스로 긍정적인 마음과 습관적인 웃음을 늘 간직하며 봉사와 희생 정신으로 본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의사는 스스로를 아끼는 자기사랑이 반드시 필요하며 의사 동료간의 존경과 이해도 꼭 필요하다. 의사가 건강해야 인류가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정은상 취재기자
201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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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서 터진 웃음보
정은상 취재기자
201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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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정은상 취재기자
201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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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전파하라
정은상 취재기자
201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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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웃는 사람과 가까이 하라
정은상 취재기자
201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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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사소한 일에서 웃음을 찾으라
정은상 취재기자
201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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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함께 활짝 웃어라
정은상 취재기자
201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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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웃어라
정은상 취재기자
201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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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 있는 리더가 되려면
정은상 취재기자
20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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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웃게 하라
정은상 취재기자
201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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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사람이 되려면
정은상 취재기자
2012-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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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음도 습관이 되면 고치기 어렵다
정은상 취재기자
201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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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웃지요
정은상 취재기자
201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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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웃는 사람이 포용력이 있어
정은상 취재기자
201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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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관룡산 바위
정극원 취재기자
201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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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호 (2011.12.1발행)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백악관 대통령 안보 비서관이 되기까지 (4편)
(※ 지난 줄거리)
6.25 전쟁때 부모님이 인민재판에서 총살형을 당하는 모습을 본 당시 14살의 임종덕 소년은 서울역을 무대로 소매치기와 절도 짓을 하면서 자신이 데리고 있는 100여명의 어린 고아들을 먹여 살렸다. 그러던 어느날 임종덕 소년에게 그의 앞길을 인도해 줄 사람이 나타났다.
즉 그날도 서울역 앞에서 소매치기 대상자를 관찰 하던중 한 미군장성이 탄 승용차가 도착하는 것을 보았다.
임종덕은 불과 몇십초 사이에 승용차의 뒷좌석에 놓였던 가방 하나를 들고 사라졌다. 그 가방안에는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6.25 전쟁에 미국 공군의 특급 작전이 담긴 극비 작전 문서가 들어 있었다. 미군의 수사 의뢰를 받은 한국 경찰은 이것은 틀림없이 임종덕의 소행으로 쉽게 판단 임종덕을 찾아가 가방을 받았다.
그런데 그 가방 안에는 극비 문서가 이미 사라졌다. 임종덕은 가방에 든 카메라만 남대문 시장에 팔았다고 하면서, 서류종이는 서울역 건물 옆에 버렸다고 했다. 다행히 그 극비 문서는 버려진 장소에서 되찾았다
임종덕 소년이 형사들에게 취조를 받는 동안 그가 데리고 있는 수십명의 어린 고아들이 형사들을 둘러 쌓고 우리형님 용서해 달라고 울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가방의 주인공인 그 미군 장성은 임종덕 소년의 처지를 다 알고 나서 임종덕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하우스 보이로 채용했다.
그 미군 장성이 바로 6.25 전쟁에 미국공군을 총지휘하는 미국 제5공군사령관 스티브 토마스 화이트 공군 중장이었다. 이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임종덕 소년은 화이트 장군의 양아들로 입적되어 서울중학교를 졸업후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교 국제정치학 박사를 거쳐 월남전에 그린베레로 참전했다.
임종덕은 월남전에서 부하 3명을 살리기 위해 자진해서 월맹군에게 포로가 되었지만 그는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 당시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은성 무공 훈장을 받았다. 그후 임종덕은 5년후 닉슨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백악관의 대통령안보 비서관이 되어 키신저와 함께 중국과의 국교수립을 위한 소위 핑퐁외교를 전개해 나간다.
임종덕은 그동안 모택동을 다섯 번 만났고 당시 중국 총리였던 주은래와도 여러 차례 만났으며, 특히 임종덕의 또 하나의 이름인 임성래란 이름도 당시 주은래가 작명을 해줄 만큼 주은래는 임종덕을 동생처럼 호의를 베풀었다.
한편 미국 탁구 선수단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등지를 순방하면서 탁구 경기를 통한 양국의 스포츠 교류를 서서히 진행시켜 나갔다. 그리고 이미 1971년 키신저의 중국 극비 방문에서 합의한데로 닉슨 대통령은 1972년 2월 중국을 공식 방문 상하이 공동성명이 발표된다.
세계 역사는 이때를 서로 적성국가였던 미국과 중국이 핑퐁외교 즉 탁구 외교가 양국간 수교의 징검다리의 출발이라고 기록했다. 당시 중국은 모택동의 문화 혁명으로 외국의 어떤 문화도 침투할 틈이 없었는데, 오직 이 탁구 경기만이 중국 정부와 국민들의 거부 반응이 없었다.
불과 2.5g의 가볍고 작은 탁구공이 미국 중국간의 외교 관계를 성사시키는데 일등공신이요 이야말로 노벨평화상 감으로 전세계를 흥분시겼다.
-미국 LA에 이민 교회 창립에 나선 임종덕
임종덕은 미국 LA를 출장중에 우연히 한국에서 온 목사의 부흥회 장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설교를 하는 목사의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었다. 바로 1953년 임종덕이 열다섯살 소년때 서울 여의도의 미공군 교회 주일예배때 한국 공군 장병들에게 설교를 했던 당시 공군군종감이 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과 아버지 화이트 장군이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그날 임동선 군종감의 설교에 감동했던 임종덕은 약 20여년만에 이곳 부흥회에서 다시 만났다. 두사람은 그때 주일예배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임종덕은 임목사에게 중대한 제의를 했다.
즉 70년대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이민을 올 것인데, 이들을 위해 빨리 이민교회를 만들자고 했다.
이렇게 해서 1970년에 오늘의 LA 동양선교 교회가 창립되었다. 동양선교 교회는 미국으로 이민 온 많은 한국 사람들이 낫선 타국땅 이역에서 서로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모이기 시작하여 성도 수가 한때는 8천명에 달하는 미국의 한인교회중에 가장 큰 교회가 되기도 했다.
한편 임종덕은 주일날만 되면 꼭 LA에 있는 동양선교 교회에서예배를 드리기 위해 워싱턴에서 LA까지 먼 거리를 왕복하면서 교회를 섬겼다. 그러나 국가 공무로 국내외 출장이 잦은 관계로 매 주일마다 LA까지 가는 교회 출석이 쉽지 않았다.
교회 창립 5주년이 되던 1975년 동양선교 교회는 교회창립의 맴버였던 임종덕을 장로 추대에 나섰다. 이때 임종덕은 과연 자신이 장로가 될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장로 후보자의 필독서로 알려진 이판석 장로의 과 이성봉 목사의 두권의 책을 밤을 세워가며 여러번 깊이 탐독했다. 결론은 아직 장로로서 직분을 감당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닿고 장로 추대를 사양했다.
한편 자신과 함께 일했던 헨리 키신저 외교안보 보좌관이 국무장관이 되면서 미, 중 외교관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임종덕은 1974년에 그의 생애에서 가장 슬픈날을 맞이했다. 즉 그의 양아버지였던 화이트 장군이 83세로 서거했다.
서울역에서 소매치기와 절도행각을 했던 자신을 오늘이 있기까기 키워준 그 아버지의 위해했던 일생이 끝나는 것이 너무나 아쉬워 임종덕은 하루종일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많이 울었다. 화이트 장군은 아들 임종덕에게 훌륭한 교육을 시켜준 하버드 대학교와 또한 자신의 모교인 미공군 사관학교에 유산을 기중했다.
-백악관을 떠나야만 했던 임종덕 대령
핑퐁외교 즉 탁구 친선경기로 시작된 미,중국간 외교는 드디어 1979년 양국간의 국교가 수립됨으로서 임종덕의 중차대했던 사명도 끝났다.
그러나 임종덕은 계속해서 닉슨, 포드, 카아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백악관 대통령 안보 비서관으로써 세계 각국의 정보를 석 대통령께 보고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한편 임종덕의 백악관 근무에 생각지도 않았던 시련이 닥아왔다.
즉 카아터 대통령이 주한 미지상군을 4,5년 사이에 완전 철수하겠다고 발표하자 주한 미군 사령부 참모장 싱글러버 소장이 기자회견에서 철군 반대를 주장했다. 싱글러버 장군은 1977년 5월 17일자 워성턴 포스트지와의 대담에서 “지난 1년간의 집중적인 정보 활동결과 북괴의 군사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도 철군 결정자들은 북괴의 군사력에 대해, 2,3년전 낡은 정보에 근거를 두고 철군을 할려고 한다.”라고 하면서 카아터의 철군 계획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이상과 같은 워싱턴 포스트지와의 대담 기사가 나간지 이틀 뒤 즉 5월 19일 카아터 대통령은 크게 분개하여 싱글러버 장군을 즉각 소환하라고 브라운국방 장관에게 명령했다.
즉 미군의 최고 통수권자인 자신에게 철군 반대에 대해 직접 보고 하라고 했다. 싱글러버 장군은 당시 군사정전위원회 UN군 측 수석대표에 주한 미군 사령부 참모장 등 서열에서는 제3인자의 위치였다. 미국 대통령이 해외 주둔 미군 장성을 소환한 것은 1951년 6.25 전쟁때 트루만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을 소환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임종덕은 당시 카아터 대통령과 싱글러버 장군과의 대담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카아터 대통령은 싱글러버 장군을 주한미군참모장 직에서 해임시킨 뒤 어느날 임종덕을 불러 “당신의 조국이란 입장을 떠나서 나의 철군 계획과 한반도 정책에 대해 말해 보시고”라고 질문을 했다.
임종덕은 평소의 생각데로 말했다. 즉 4만여명의 주한 미군이 있으므로 북한이 전쟁도발을 하지 못하며 대신 한국은 경제부흥과 더불어 미국이 바라는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했음을 강조했다고 한다. 한편 임종덕이 카아터에게 정면으로 강력하게 제시한 사례가 있었는데 이것이 그가 백악관을 떠나야 할 계기가 되었다.
즉 국가안전보장 이사회에서 카아터 대통령은 과거 월남전에서 도망친 도망병들을 전부 사면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에 아무도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하자 임종덕은 카아터의 사면 지시를 반대한다고 했다.
즉 자신이 월남전 참전용사로서 전투중에 자기만 살겠다고 무기를 버리고 도망을 친 장병에게 대통령이 사면을 한다면 앞으로 전쟁터에서 누가 미국을 위해 생명바쳐 전투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임종덕의 반대 의견을 듣던 카아터의 심기가 좋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때 임종덕은 대령에서 장군 진급을 불과 두달 앞두고 있었는데, 자신도 앞서 싱글러버 장군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을 느꼈다. 임종덕은 사사건건 대통령에게 결레가 되는 처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자진해서 대통령에게 대통령 안보비서관 직에서 다른 군부대 전근을 건의 했다.
그리하여 임종덕은 미국의 어느 예비군 부대의 심리전과 창설 임무를 받고 백악관을 나섰다, 정든 백악관을 나올 때 그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 보면서 그의 발길은 교회로 향하고 있었다.
텅빈 교회안에서 그는 모처럼 하나님께 긴 시간의 감사 기도를 할 수 있었다. 임종덕은 1986년 육군대령으로 예편하면서 LA동양선교교회 장로 장립을 받았다.
현재 부인과 함께 LA에 살고 있으며 슬하에 딸만 셋을 두고 있는데 이 딸들에게 학생시절 조국의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서울 정신여고에 청강생으로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고국에 올 때마다 서울역을 찾아간다
서울역은 임종덕에게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고향이다. 그래서 그는 서울에 올 때마다 서울역을 찾아간다. 서울역앞 광장을 넋을 잃은 듯이 보고 있는 동안 임종덕의 머리에는 61년전 14살의 전쟁 고아로 배고팠던 그 시절의 자신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밥을 얻어먹지 못할때는 종로구 내자동의 무물가를 찾아가서 물배라도 채우겠다고 샘물을 꿀꺽 꿀꺽마셨다. 어느날 허기에 지쳐 우물가에 힘없이 누워있던 임종덕에게 외국 신문기자가 와서 영어신문 한 장을 펴서 보여 주었다. 기사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임종덕 자신의 얼굴이 나와 있었다.
즉 신문에 난 자신의 모습은 너무 배가 고파서 두레박으로 물을 올리던 할머니에게 물을 얻어 먹는 장면의 사진이었다. 후일에야 알았지만 이 사진은 미국의 타임즈 기자가 찍은 “우물가의 소년”이란 기사로 당시 너무나 유명한 풀브라이트 종군 기자상을 수상했던 사진이었다.
한편 서울역 광장은 당시 임종덕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생활의 근거지요 직장이었다. 15살의 나이에 수십명의 코 흘리게 전쟁 고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의 눈은 항상 돈과 귀중품을 가진 사람만 노리고 있었다.
15살 소년 임종덕의 소매치기와 절도 기술은 그야말로 귀신도 놀랄 정도었다. 매일같이 진행되는 소매치기와 절도의 순간적인 기술의 승패는 바로 임종덕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어린 고아들의 생사와 직결되었기 때문에 아예 그 순간의 실패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당시 서울역에서 큰 절도 사건이 터지면 형사들이 제일먼저 임종덕을 지목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임종덕은 지금도 61년전 이곳 서울역 광장에서 양아버지와의 그날의 인연은 바로 하나님이 맺어준 것임을 천번 만번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임종덕으로 하여금 미국 제5공군 사령관인 3성 장군의 가방을 훔치게 하여 임종덕을 장군의 양아들로 입적 시키기 위한 바로 하나님의 완벽하고 빈틈없는 시나리오였다고 굳게 믿고 있다.
만일 그날 하나님께서 그날의 인연을 맺어 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영영 그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교도소를 평생토록 드나들며 70평생을 폐인으로 망쳤을 것이라고 했다. 임종덕이 서울을 방문하면 서울역 이외에도 앞서 언급했던 굶주린 배를 즉 물배로 채워줬던 내자동, 그리고 양아버지와 함께 난생처음 교회를 나갔던 여의도를 가본다.
그러나 그때의 내자동 우물터와 여의도 비행장의 교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고층 빌딩들은 뉴욕의 맨하탄을 방불케 한다. 6.25 전쟁으로 페허가 되었던 당시 서울 거리는 넝마주의 소년들과 거지들이 줄을 이었고 빈(貧)과 궁(窮)은 이 나라 산천을 휩쓸었다.
올해(2011) 75세인 임종덕도 바로 그 시대에 불쌍한 고아였다. 자신 혼자도 먹고살기 힘든 그 난리판에 소매치기와 절도로 어린 고아들을 먹여 살리던 임종덕을 하나님은 결코 무심치 않았다. 이말은 바로 하나님은 남을 위해 스스로 돕는자를 도와 준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깨우치고 있다.
한편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의 최고 두뇌들만 일할 수 있는 백악관에 그것도 대통령의 안보비서관으로 등용시킨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임종덕은 또 한 번 강조했다. 서울역 광장은 임종덕 인생에 너무나도 창피스럽고 또한 슬픔과 눈물의 기억만 있어 두 번다시 찾을 곳이 못되지만 그래도 그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의 첫사랑을 받은 장소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부르는 찬송이 404장이라고 하면서 필자와의 대담을 마쳤다. 『하늘을 두루마리삼고 바다를 먹물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 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다 쓸까. 저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여 영원히 변치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끝
글 : 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 교회 협동장로)
이병식 장 로 (주님의 교회)
이을형 장 로 (주님의 교회)
인태호 장 로 (상도성결교회)
이공진 장 로 (화평교회)
최진성 장 로 (인천성가단 단장)
길가에 교회
장경희 권 사 (주님의 교회 3부 찬양대)
배홍자 권 사 (주님의 교회 1부 찬양대)
강석인 안수집사 (주님의 교회)
박규택 안수집사 (주님의 교회)
김민기 (전 KBS 언론인)
김용운 (일산에서)
박남태
※ 지난번 106호는 1천부를 주렸기 때문에 고정독자(군인교회) 1천명이 106호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107호는여러분의 귀한 헌금으로 정상 발행되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안드레명상 선교헌금 안내
국민은행 268802-04-031127
(예금주 : 김 수 호)
* 안드레 명상은 KBS로고스와 월드뉴스에도 동시 게제됩니다.
* KBS로고스 : (www.kbslogos.com)
* 월드뉴스 : (www.worl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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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에서『안드레 명상』을 쳐도 됩니다.
발행처 : 안 드 레 명 상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7-4
H. P : 010-8871-0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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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뉴스
2012-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