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경찰의 부실수사와 성인지 감수성 부재가 부른 비극,
제2의 비극을 누가 막을 것인가?
― 단 한 차례 조사로 피해자의 호소를 배척한
경찰의 부실·태만 수사를 강력히 규탄한다.
안산의 한 주점에서 일하던 19세 여성 노동자가 준강간 피해를 호소했지만, 안산단원경찰서는 피해자에 대한 단 한 차례의 대면조사 후 사건을 불송치로 종결했다.
경찰은 사건 전후 CCTV에 담긴 대화와 이동, 배웅 장면 등을 근거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뒤늦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의 보완수사는 전혀 다른 사실을 드러냈다.
압수수색과 디지털 포렌식, 의료 자문, 참고인 조사, 음성 녹음 확보 등을 통해 피고인이 피해자를 CCTV 사각지대로 데려간 정황과 피해자가 당시 복용하던 약과 음주가 겹쳐 스스로 걷기 어려운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 등을 확인했다.
범행 직후 피해자가 지인에게 피해를 호소한 정황도 확보됐고, 피고인은 준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는 불송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동의한 적 없다”는 취지의 글을 남긴 뒤 세상을 떠났다.
피해자가 죽은 뒤에야 수사기관이 놓친 사실들이 드러났다는 것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수사상의 실수를 넘어, 성폭력 사건의 특성과 피해자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초동수사의 심각한 문제를 보여준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형사사법 체계 개편으로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 기능이 폐지되고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요구를 중심으로 사건을 통제하는 구조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경찰의 1차 수사 책임이 더욱 커진 상황에서 초동수사가 부실할 경우, 이를 독립적이고 신속하게 바로잡을 실질적인 안전망이 충분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준강간 등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의 상태, 사건 전후 정황, 디지털 자료와 의료자료 등 다양한 증거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수사기관이 초기 단계에서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 증거 공백을 피해자 측이 사실상 메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또다시 싸워야 하는 구조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에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경찰청은 이번 사건의 초동수사 전 과정을 철저히 감찰하고 담당 수사관과 지휘라인의 책임 여부를 명확히 규명하라.
둘째, 경찰은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반영한 전문수사 역량을 강화하고, 피해자의 행동만을 근거로 피해 사실을 배척하는 수사 관행을 즉각 개선하라.
셋째, 정부와 국회는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 기능 폐지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수사 공백을 면밀히 점검하고, 경찰의 부실한 불송치 판단을 실질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는 독립적인 통제 및 피해자 구제 장치를 마련하라.
한 번의 잘못된 수사 판단이 피해자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이번 사건이 마지막이 되도록, 경찰의 성폭력 수사 관행과 형사사법 체계의 견제 장치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2026년 10월 8일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