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정(鄭)씨 문중의 수난(受難)
구담(龜潭) 정 기 보

한민족의 역사는 마고 시대를 지나 삼성제의 단군왕검에서 한민족 한 핏줄로서 한민족의 가슴에 새겨 왔다.
역사적으로 혜아릴 수 없는 비결이 있지만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祕記)를 보면 한민족의 성씨 도읍이 전해지고 있는데 고려의 왕씨 지배를 지나 이씨조선의 지배를 알렸다.
정씨 조선 8백년 계룡산 도읍 그리고 조씨왕 범씨 순으로 전하기를 신라시대부터 알려왔는데 이씨조선 중기부터 천기의 내력으로 전해진 정씨 조선의 도읍을 끊으려고 수많은 비기들을 수탈하고 문중에서 보관 중인 비결서를 소각하고 정씨들의 저항을 반역죄로 몰았다.
필자의 증조부께서는 이씨조선 말기에 울산에서 울산 경주 안강 포항등에서 세입으로 거출된 양곡을 관리하면서 정참봉으로 불렀는데
양곡을 울산 앞바다 세죽에서 곡물을 가득히 배에 싣고 한양으로
운반하셨으며 정참봉 어른으로 불렀다.
임진왜란 7년 전란을 일으킨 왜군이 이씨조선에 신군부 지원을
미끼로 접근하여 상륙한 일본군이 식량 수습을 울산의 곡물창고에 들어와서 강제로 곡물을 털어갔는데 그 시절 선비들이 일어나서 저항하였고 저희 증조부님께서는 1880년 중반에 나전들 10여명을 동원하여 야밤중 몰래 왜군부대의 곡물창고에 불을 질렀다.
불을 낸자를 수소문하며 찾는 범위가 좁혀오자 저희 증조부께서는 가족과 함께 야반도주하여 경북 건천(송정)의 영일 정씨 문중으로 자취를 감추었는데 건천까지 좁혀진 소문에 호랑이가 들끓는 보현산 깊은 산중으로 숨어 살게 되셨고 큰 조부님은 양산통도사 승려로 가셨고 둘째 필자의 조부님께서 증조부님의 대를 이었다.
8.15 해방을 맞이하여 깊은 외딴 산속에서 인근의 마을로 내려왔는데 증조부님의 피신 생활은 10여명의 나전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도피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큰집의 백부께서는 필자의 아버님과 같이 부산에서 집안의 입젯날이되면 고향을 찾았는데 그럴 때마다 창문위 선반에 보관중인 함을 내려놓고 함속의 노란황금색 보따리를 풀면 귀하게 보전중인 책 한권이 있었다.
검은 책 표지에 천기비록이라고 적힌 책을 펴서 내용을 풀려면 한자문 구절이 위에서 내려 해설하는 것이 아니고 밑에서 위로 해설해야 한다면서 우리 후세 중에서 이 글이 터득되면 풍운조화를 하고 자유자제한 변복술과 순간이동을 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조부님께서도 무척 애쓴 내력 중에 멀리 있는 상주어른께서 보현산을 찾을 때는 축지법으로 다녔다 했으며 아마도 자주오가신 것은 천기비록을 복제하시려고 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백부님은 산기도를 하면서 풀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걸 필자가 배움의 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항상 심사숙고 했는데 그 때 그 천기부록이 복사될 수만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천기비록이 아마도 다른 정씨문중의 가문에서는 보전되고 있지않나 생각하는데 필자의 문중에서 소지한 책이 백부님께서 탐문 도중 어느 지인이 훔쳐가서 지금은 그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고대사에 집중하면서 정씨 가문의 정도령이 정씨조선 8백년 도읍과 천기비록이 가슴에 마주치게 되는데 어느 누구라도 정씨문중이 풀어야 할 희망이 있다면 나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씨조선의 정도령 수난을 지나 현대에 와서 정감록을 정(正) 감록으로 해석하는가 하면 예수재림을 앞세워서 정감록의 정도령으로 둔갑하는 세월이 되었다.
이렇게 정씨의 수난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는지 하늘도 무심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한민족 문화유산 보전회 회장
박애단 회장
푸른바다사랑 운동본부 회장
해양경찰청 환경보전협의회 중앙회의원
월드뉴스 환경스페셜 집필
소상공 연합회 고문
국회국정감사 NGO 모니터단 자문위원장
서울포스트뉴스 시와 수필 산책집필
詩 集 : 동트는 새벽. 여보 ! 당신은 힘. 編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