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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09-15 08: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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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진 월드뉴스 정치부장(국회팀장)
1990년대만 하더라도 변호사라는 직업이 돈 벌기에 좋았다. 필자가 고시공부를 하던 때가 그 시기인데, 서울에 올라와서 공부할 때 주위사람들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진짜 공부를 잘하는 수재들중 몇몇은 판검사의 길로가지 않고 로펌에 가서 돈을 번다고 말이다. 소송 건중에서 앞으로 돈이 좀 될만한 분야로 해상법 분야인 데, 아무개는 미국,영국에서 그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로펌에 소속된 하이클라스 변호사들은 1년에 소송 사건을 몇 개 안 맡는데, 일단 하나 맡았다하면 아주 굵직한 것을 맡는다고 했다. 그리고 큰 소송 한 건 잘 해서 한 방에 수 십억이상 벌고, 그 외의 시간에는 유유자적하며 지낸다고 했다. 그 당시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딱 내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칼럼에서 한번 말한 적이 있는 데, 필자는 메모하는 습관이 없다. 메모나 필기하지 않고 내용을 기억하려면 방법은 딱 하나다. 그 방법은 바로 `극도로 간명하게 핵심요지를 파악해서 알기쉬운 형태의 이론이나 지식으로 만든 다음에 머리속에 저장하는 것`이다. 군더더기를 쳐내는 기술이 뛰어나면 공부하기가 아주 편하다. 예전에 강용석 전의원이 공부잘하는 법에 대한 강연에서 `고시공부는 분량을 점점 줄여나가는 것이 관건`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핵심적인 내용과 쓸데없는 내용,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굵직한 건과 시덥지 않은 건을 분별할 줄 알면 공부(일)할 양이 준다.

둘이 겨루는 게임은 나와 상대방을 모두 다 볼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축구는 둘이 겨루는 게임인데, 이기려면 상대방이 점수를 내지 못하게 하고 나는 점수를 내면 된다. 바둑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을 압박해서 집을 못 짓게 하고 나는 집을 많이 지으면 이긴다.
정치나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과 권력을 두고 경쟁한다 하자. 권력을 차지하려면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첫째가 유능함(지혜로움), 둘째가 인품, 세째가 준법성이다.

정치세력들은 공론장에서 서로 다투며 국민들로부터 위의 세가지를 인정받으려고 경쟁한다. 권력경쟁(선거)은 둘이 겨루는 게임이므로, 바둑의 경우처럼 한쪽은 다른 한쪽이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게 하고 자기자신은 인정받으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내가 상대방이 인정(득점)받지 못하게 하는 것을 수비라 하고, 내가 상대방의 수비를 뚫고 인정(득점)받는 것을 공격이라 하자. 그런데 잘 살펴보면 공격이 곧 수비이고 수비가 곧 공격임을 알게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세력간의 격돌이 수시로 일어난다. 보통 굵직한 이슈나 사안, 담론에서 충돌한다. 국민들은 그 격돌을 지켜보면서 어느 한쪽에게 점수를 준다. 정치세력의 입장에서는 경기를 잘 치러서 국민들로부터 유능함, 인품, 준법성등을 인정받는 것이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이 죽을 지경인 것은 유능함을 인정받으려는 노력했음에도, 누군가가 나타나서 유능함을 인정받지 못하게끔 저지시키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수비에 번번히 막혀서 국민들로부터 유능함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니까 암울해진 것이다. 축구로 치면 이리로 패스하면 잘라 버리고, 바둑으로 치면 집 지을려고 뻗었는데 상대방이 아다리치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능함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이 내놓은 의견, 논평,식견, 정책, 지적 생산물이 상대방의 그것에 의해 패하고 하급취급당했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논리나 식견, 지적 생산물등을 잘 파악하고 그것보다 더 나은 논리나 식견, 지적 생산물을 미리 준비해 뒀다가 격돌하는 순간이 오면 써먹는 것이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하는 일이다. 상대적 우위를 가지는 식견등을 항상 준비해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떤 사안에서 상대방의 논리는 이러하니까 나는 그 논리에 대해서 이렇게 받아치고 상대방이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논리를 제시하여 내 식견이 더 우위임를 보여줘야지` 하는 준비성이 없다.

필자는 대한민국 서적, 신문의 사설, 칼럼, 시론, 보고서,정책제안등을 많이 읽어두는 편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주장보다 차별적 우위가 있는 의견을 평소에 기회되는 대로 미리 준비해놓고 이론으로 짜서 머릿속에다가 비축해 놓는 습관이 있다. 그렇게 평소에 미리 준비 해놓으면 100전 100승을 거둘 수 있게 된다. 토론을 해보나마나 이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2년도에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세균의원이 주최한 번개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정세균 의원한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조중동은 내가 책임지고 다룰 수 있다``고. 대선 끝난 후 좌파진영에서 필자에게 기자나 논설위원 자리를 하나 줄줄 알았다. 그런데 민변 노동간사를 시킬려고 하더라. 그들은 남의 의향은 전혀 무시하디시피 한다. 그래서 다시 새누리당으로 복당했다.

이번에 북한 포격이 있었을 때,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대표는 대화에 임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가 보기에 자칫하면 야당이 여론을 선도하는 모양새를 띠고 국민들로부터 유능함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야당이 유능함을 인정받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대화에 임하여야 하는 것에서는 결론을 같이 하지만 왜 대화에 임하여야 하는 지에 대한 설명에서 차별적 우위를 보여주면 된다.

문재인 대표가 청와대를 향하여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야당의 의견에 따라 주어서 고맙다``고. 사실 그 말은 청와대에다가 한 말이라기보다는 대북관계 및 안보면에서 유능함을 인정받고 싶어서 국민들 들으라고 한 발언이었다. 그런데 청와대는 우리 우파진영에서 그런 주장이 나온 것을 듣고 독자적으로 결정했을 뿐, 야당의 의견을 좇아 한 것이 아니라는 투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결론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본 건에서 득본 게 별로 없고 박대통령 지지율만 잔뜩 올라갔다.

사실 정치세계에서는 국민들 앞에서 유능함을 인정받을 수 있는 큰 건은 어지간해서 잘 터지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큰 건하나 터지면 집중력을 발휘해서 꽉 휘어잡아야 한다. 이번에 큰 건 하나 했더니 우파세력의 형편이 확 핀 것이다. 별 영양가 없는 백 개 하는 것보다 굵직한 거 하나 잘 하는 게 낫다.

고수들(하이클라스 변호사등)은 고생은 적게 하면서 수확은 크게 얻는 식으로 일한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큰 건과 작은 건을 분별할 줄 알고, 작고 중요하지 않은 것에 힘빼지 않고, 크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별 시답지도 않은 것에다가 온 정열과 악다구니를 다 쏟아내는 사람들을 볼때면, 정말 저렇게 살고 싶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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