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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10-17 12:2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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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상왕봉(해발 1430), 칠불봉(해발 1433미터)

빈다.
사방팔방 바라 보이는 가야산 정상에서 탄성으로 연상하는 말이다.
하나의 언어가 아니라 다의미성의 언어로 떠올려 본다.

빈다(貧多).
마음을 다 비워서 가난함이 많다.

빈다(賓多).
모양새가 너무 아름다워 항상 찾아오는 방문객이 많다.

빈다.
경상도 사투리로 보인다의 준말이다.

빈다.
지극정성으로 불공을 드린다의 의미이다.
그 많은 다의미성이 단 한 가지의 의미상실도 없다.
가슴 가득 유의미성을 채우는 가야산에서 하늘을 만나고 땅을 만나고 산의 세월을 만난다.

가다.
우리네 어머니가 성가한 자식을 그렇게 부른다.
가야산 산능선들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어머니의 품처럼 팔을 벌려 산찾는 발걸음을 반기고 있다.
너무나 많은 보여줄 무언가가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음을 자랑하듯이,
그래서 가야산에 가다.

누구나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한다.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어머니이기에 사랑하는 것이다.
가야산은 우리의 산이다.
가야산은 정녕 아름다운 산이다.
가야산 오르는 산초입의 백운동계곡에서 직감한다.
초기국가로서의 가야가 이곳에서 개국하였기에 우리의 산이고,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쌓이고 다져진 기암괴석들이 경이로워 아름다운 산이다.

백운동계곡의 맑은 물이 쪽빛 하늘을 비추고 있다.
지상으로 하강한 낙엽들이 뭉쳐 물위에 둥둥 유영을 하면서 애오라지 세월을 마침하고 있다.
등산길을 바위와 돌로 정비하여 평탄을 만들고 있다.
인간의 애씀이 부조화가 아니라 자연을 더 자연답게 하고 있다.
오르기 편함을 만들어 누구에게나 조망의 기회를 제공하려는가 보다.

흔적을 잃어버린 백운암자리에서 천년세월을 상징하는 빨간 단풍나무가 고즈넉하다.
바람을 타고 흐느적이는 단풍 나무잎새가 심금을 자극하고 있다.
절터 돌층계 위를 덮은 숲에서 환청이 들려온다.
그 안온하고 평탄하였던 가야국의 장엄한 전설들이 사위어 간다.
성큼성큼 발걸음이 정상으로 향한다.

허다.
아마득한 전설이 들려주는 청음만이 공허를 대신하고 있는 듯 산 곳곳이 텅텅비어 있다.
허다들로 가득 차있는 지난 세월들이 산정상부근의 석성에 이르러 드디어 구체적 흔적이 되고 있다.
바람이 만드는 계절이 있다.
한줄금의 차가운 바람이 끝간데 없이 휘익 불어간다.
바람에 동승한 잎새 다 떨군 굴참나무가 겨울을 만들고 있다.
바람지나치자 마자 금새 고요가 산의 비중을 정하고 있다.

가야산 정상바위에서 문득 말밥굽을 본다.
말의 지치지 않는 동력의 끝지점은 그 세참의 속도를 버티어 내는 말밥굽이리라.
터질듯한 심장의 박동이 말발굽에 의하여 비로소 초속의 속도를 견인하는 것일테니 말이다.
최정상의 칠불봉이 말발굽처럼 그렇게 바위들을 거느리고 있다.

수평의 같은 높이로 군집을 만들어 아름다운 바위가 있다면,
수직의 높낮이의 층계를 만들어 더 아름다운 바위가 있다.
7개의 부처의 형상을 한 칠불봉의 바위가 그렇다.
칠불봉이 합심하여 무심을 집행하려는 듯 허공에 이마를 맞대고 있다.

거친 호흡을 내쉬며 암봉에 오른다.
허공을 휘익 날아가는 산새 한 마리의 날개짓이 힘차다.
칠불봉의 무심을 유심히 올려다 본다.
무심들을 유심으로 바꾸는 것이 무위에 그치자 멀리 지나쳐 온 산 아래를 내려다 본다.
그저 평탄한 능선이 아니라 비경으로서의 능선이다.

모전탑의 품평회가 열리고 있는 듯 하다.
정사각면체의 돌들로 쌓아올린 형체의 산능선이 다투어 자신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세 갈래의 팔을 벌리고 있는 산능선 사이사이에 터넓은 동산이 자리잡고 있다.
원색의 가을채색을 마친 동산이 평온에 고요하다.
이곳이 바로 이 세상에서 제일 평화로운 동산이구나라고 마음을 열어제치자 동산의 터넓음이 화이부답하고 있다.

상왕봉(우두봉)에 앉아 병기를 담금질하던 민초들을 떠올린다.
탐관오리들을 척결하기 위하여 가야산으로 올랐던 시대의 암울함이 떠오른다.
수련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넓은 상왕봉 아래의 개활지에는 지금 억새가 휘날리고 있다.

서다.
서쪽 경사면을 타고 하산한다.
작은 대나무숲을 양편으로 이산가족처럼 도열하게 만든 산길이 마음아프다.
서쪽 경사면이 단풍으로 물들기도 전에 겨울채비에 들어간 나무들이다.
그 잎새를 다 떨구고 체온조절을 하고 있다.
땀식은 몸에 겉옷을 걸친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 만남을 사전에 감지라도 한 듯이
차가움에 편승하여 더 청아한 계곡물 한 모금을 들으킨다.
물흐르는 계곡 가파른 산길을 넘어 산능선에 이른다.

숨이 멎었다.
심장이 멈추었다.
말문도 잃었다.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마애불입상을 그곳에서 그렇게 만난다.
8미터가 넘는 자연석이 그렇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벌써 경이롭다.
그 큰 바위 어느 한 부분도 허툴게 버리지 않고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
가야산에서만 가능한 예술혼의 승화를 만난다.
아침을 여는 비질로 마애불 앞에는 티끌 하나 없이 정갈하다.
한참을 서서 넋놓고 마애불을 관조한다.
마애불의 신비적 충격에 감전되어 해인사까지의 걸음걸음이 구름 위의 허공에 떠있는 환각으로 걷는다.

꺾다.
해인사 가득 메운 인파 속으로 되돌아 온다.
아스라한 시간여행을 마치면서 올려다보는 암자 위의 단풍이 처연하다.
가야산에서는 세월을 초월하여 전승되고 있는 정신이 있다.
노도처럼 용맹한 구국의 염원이다.
산은 몰지각한 인간의 문명에 침묵할 뿐 문명의 이기를 시샘하지도 않는다.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그 가야산을 깎아 골프장을 건설하겠단다.
그 몰지각한 상혼을 꺾은 사람들의 정신이 위대하다.
얼마나 아찔한 순간이었던가.

해질녁의 시간에 해인사입구에서 성주로 넘어가는 국도에서 산전체를 다시 올려다 본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시샘도 다툼도 없는 산봉우리가 전경을 펼치고 있다.
무어라 더 말이 필요하리라.
그 풍광이 장엄하고 그 정신이 위대할진대,
가야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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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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