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0-07-09 18:09:27
기사수정

합천 가야산(만물상능선)


인적 끊긴 태고의 숲이다.
그 곳에서 태고의 신비를 감지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감각으로만 그렇게 느낀다.
비장하여 둔 공기의 입자가 얼굴을 때린다.
천년을 달려온 공기이다.

인적이 북적되지 않았으니,
태고의 시간도,
천년의 시간도 고스란하였을 것이다.
인적이 번잡하게 되면,
태고의 시간도 다 삼킬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시간만 남고,
태고의 시간은 다 소진되고 마는 것이다.

깊은 숲에 들면,
맑은 기운을 느끼는 건,
바로 그 태고의 기운을 수령하는 절차이다.
그 오랜 시간을 비축하고 있다가,
사탕처럼 나누어 주는 것이다.
태고의 기운이란 그렇게 신비한 것이다.

마법에 걸린 듯
까마득하게 잠들어 있었던 가야산의 만물상이다.
푸른 녹음의 피어남처럼,
만물상이 38년의 마법에서 풀렸다.
산에 친한 마음이니,
그 기운을 고스란히 다 받는다.

만물상의 능선이,
그 오랜 침묵을 하느라 힘겨웠을 것이다.
천년의 세월,
그렇게 흐르고 또 흘러도,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억이다.
그것은 이야기이고 전설인 것이다.
정신이 깃들어져 있는 이야기는 끝까지 남는다.
그 천년의 세월이 전하는,
전설속 만물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지만,
잠시 그 시간속으로 잠입한다.
혹시라도 후세대에 누군가가 우리들의 탐방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마음인 것이다.
마음이 맑다면,
맑은 거울이 사물을 선명하게 비추듯,
많은 것들을 다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천년의 세월도,
태고의 기운도,
다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행여라도,
천상의 세계로 가는 통로를 찾으면,
만물상을 걷는 걸음은 구름을 타는 것이다.
구름이 심상찮게 머무는,
그곳이 천상으로 가는 통로일 것이다.

아롱지는 만물상이다.
바위는 장군이 되고
암석은 투구가 되고,
돌은 왕의 의자가 된다.
너럭바위는 광장이 된다.
차마 눈을 바로 뜰 수가 없다.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장엄함이다.

그것은 도무지 산이 아니다.
그것은 천상의 풍경이다.
그 무엇도 표현하지 못함이 최상이 된다.
그게 인간의 능력인 것이다.
그 누구라도 입을 다물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천상의 풍광앞에 ‘아하’하고 겨우 탄성 하나 내지를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쌓이고,
산은 더 깊어질 것이다.
만물상은 더 의연할 것이다.
시간을 따라서,
세월을 따라서,
후대를 더 기다릴 것도 없다.
지금 현재에도 만물상의 장엄함 앞에서,
차마 걸음을 떼지 못하고 바위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부연설명:
만물상의 비경을 보기 위하여서는 백운동에서 기존의 코스인 서성재까지 먼저 올라서 서성재에서 만물상능선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아야만 제대로 감탄하면서 볼 수 있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worldnews.or.kr/news/view.php?idx=766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