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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0-05-30 21: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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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디딘 생각
 
 너무 오래 동안 그댈 보지 못했습니다. 유독 올 4월은 소나무 가지가지에 앉은 늦은 눈 탓에 아침햇살이 이렇게 일찍 내린다는 것조차도 몰랐습니다.

봄기운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한 채 새봄을 이미 잃은 것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늦은 4월, 늦은 봄이지만 먼 산엔 아직 잔설이 남아 한 낮에도 냉한 겨울 기운을 품어냅니다.

하지만 개울가 버들에 이미 물이 오르고, 겨우 내 언 듯 멈춰있던 목련꽃 움도 솜털로 지어진 겨울 외투를 하나둘 벗습니다. 아침 출근길, 나는 목련꽃 움이 벗어놓은 겨울 외투를 하나 집어 듭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것은 부드러우면서도 마치 가죽처럼 질깁니다. 그저 겉모습만을 보고 그것이 딱딱할 것이라 여겼던 내 생각이 잘못이었습니다. 보는 것만의 부족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버들강아지에 앉은 솜털이 목련 꽃 움의 겨울외투에도 늦가을 대지에 내린 서릿발 같이 앉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습니다.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감촉이 여린 여인의 살갗과도 같습니다.

쓰다듬을수록 손가락 끝 감촉이 더 생생해집니다. 급기야 나는 손가락 끝으로 강렬한 봄기운을 느낍니다. 강렬한 생영의 기운입니다.

그것을 매만지다 결국 까뒤집어 보기까지 합니다. 쫑긋 세운 토끼의 두 귀 모양을 한 것이 균형미까지 갖췄습니다. 그것을 몇 개 더 모아 모형을 만들면, 전에 내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조형물이 탄생할 것 같습니다. 그 조형물은 내게 행복과 새로운 만족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그것을 몇 개 더 주울까하고, 나서든 걸음을 뒤돌리다가 이내 생각을 바꿉니다. 내일 아침이면 더 많이 주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자칫 내일 아침 청소부 아저씨가 혹 그것을 모두 다 쓸어 쓰레기통에 버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 생각조차도 나를 돌려세우지는 못합니다. 나에게 아침일상은 매우 흔하지만, 언제나 바쁘기 때문입니다.

바쁜 아침 일상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됩니다. 뉴욕 커나 서울시민이나 매 한가지입니다. 특히 현대인의 일일생활반경은 실로 긴 거리까지 열려있습니다.

현재 내가 활동하는 서울은 수많은 위성도시를 거느린 거대도시입니다. 아침이면 앞서 말한 위성 도시에서 깨어난 수많은 이들을 서울로 불러들입니다. 물론 저녁이면 그들을 다시 위성도시 속 제 집으로 모두 되돌려 보냅니다.

서울에서 서울로의 이동 거리 또한 그리 만만디가 아닙니다. 저만하더라도 매일 편도 약 오십 리 길을 멀지 않다며, 왕복합니다. 자동차가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자동차는 보통사람걸음으로 두 시간 이상 걸려 도착할 곳을 단지 10분이면 도착하도록 해줍니다.

제 집은 서울 중심부의 남서쪽에 위치한 목동에 있고, 제 사무실은 그 남쪽에 위치한 서초동에 있습니다. 이 두 동 사이의 거리가 자못 오십 리 길이 약간 넘습니다.

 아무튼 서울은 매일매일 사람을 품었다 뱉었다 합니다. 세계의 모든 거대도시들도 모두 다 이런 지경 속에 있습니다. 사방팔방으로 쭉쭉 뻗은 도로와 그곳을 오가는 차들이 그 많은 이들의 아침출근을 돕습니다. 

비단 자동차만이 그런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노선의 지하철이 놓여 사통팔달로 이어지는가하면, 순환선까지 놓여 모든 도로에 도로를 연결에 또 연결합니다.

이와 연계된 버스 노선 또한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교통수단이 거대도시 서울을 연결하고, 서울 외곽까지 연 잇습니다. 이것들 숫자만큼이나 서울에 사는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바쁩니다.

이런 바쁜 와중에도 다들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곳이 또한 서울입니다. 내가 보기에 서울사람들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아예 모르는 모양입니다. 역설적으로 서울사람들은 불행하게 사는 법을 쫒으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이처럼 모든 이에게 도시생활은 모순 그 자체입니다.

이 같은 문제는 비단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도시에 공통적으로 적용됩니다. 현대인의 삶은 이렇게 도시화 된지 오래입니다. 아직도 게 중에는 도시로 들어오지 않은 이가 있긴 합니다.

특히 서울의 경우 해방되던 해 이전에 출생한 이들 중 상당수가 아직도 남아 농촌을 지킵니다. 내 아버지도 그런 부류 중의 한 분입니다. 이제 곧 그들 대부분이 대지에 디딘 발을 하늘에 올려놓을 것입니다. 그들 대부분이 아주 고령입니다.

그들이 떠난 빈자리를 일부 귀농인사들이 메우긴 할 테지만 아주 적은 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혹 또 모릅니다. 세상이 다시 뒤집히는 날이 올지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제가 위안을 삼자고 하는 넋두리일 뿐입니다. 결코 세상이 다시 뒤바뀌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애당초 사람들이 도시로 몰린 이유는 행복한 삶을 찾아 떠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살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으로 고향을 떠나 새로운 정착지를 찾게 되었으며, 새로운 정착지에 몰려든 거대한 인구 집단이 현재의 도시를 형성한 것입니다.

이렇듯 도시는 본래 행복을 꿈꾸는 곳이 아니라 삶의 자구책을 보전시켜 줄 것이라는 희망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 나서서 우연히 다다른 곳일 뿐입니다. 물론 현재의 도시는 애당초의 도시형성과정의 임계점을 지나 본격도시로 기능합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거대도시들은 그 자체로 생명을 부여 받아 꿈틀 거리는 곳입니다. 지금 농촌이나 산촌 어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이들은 도시가 자신들에게 행복을 담보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도시생활은 결코 그곳에 몰려든 이들을 행복하도록 내버려 두질 않습니다. 숨이 막힐 듯 빠른 도시순환, 곧 도시의 생명활동은 그곳 속 대부분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쫒으라고 강요합니다.

물론 보통 도시사람은 일상에 쫒긴 나머지 생각이 여기에 까지 이르지 못합니다. 많은 이들이 죽도록 일을 하다가, 곧 죽도록 도시에 쫒기다 생을 마감하는 곳이 도시민의 삶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이제 모든 도시인들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발견했으면 합니다. 안타깝지만 아직 저 역시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생각 같아 서는 더 작은 집에서 더 적게 쓰며, 적게 먹는 방법으로 도시경쟁만 피하면 될 것 같은 데 이것도 또한 완전한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맙니다.

나는 지금부터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연구할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발견되면 여러분께도 반드시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을 발견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아무튼 도시 특히 서울은 모든 것이 복잡하고 많은 곳입니다. 복잡한 만큼 편한 곳이기도 하고, 편하면서도 사람을 쉬 지치게 합니다. 서울은 알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조금만 관찰하면 매우 알기 쉬운 곳입니다.

그러나 농촌에서 서울에 오르면 서울은 알기 어려운 곳이 됩니다. 이는 서울의 모든 곳이 익숙하지 않은 탓입니다. 이런 경향은 어느 곳에서나 다 마찬가지 입니다. 서울에 익숙해지면 서울이야말로 쉽고, 금 새 또 익숙해질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사실 다들 매우 친절합니다. 하지만 서울에 살지 않다가 서울로 새로 들어오는 이들 대부분이 서울을 어려워합니다. 다들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일상 때문에 주변사람들에게 시선을 굳이 주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 당신이 서울 아닌 곳에 살다가 서울을 방문하여 길을 묻게 되면, 사람의 걸음걸이부터 보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가장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는 이에게 다가가 당신이 묻고 싶은 것을 물으시면, 보다 친절한 대답을 듣게 됩니다.

그렇다고 노숙자에게 길을 묻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마십시오. 도시경쟁을 피해 살고 있는 노숙자들의 걸음은 자연히 느립니다. 물론 나는 그들이 불행한 이들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자기만족을 느낄 이들도 있을 테니까 하는 말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그들을 보헤미안 곧 방랑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삶의 방식이 이탈이아의 그들과 서울의 노숙자는 완전히 다릅니다. 거듭 말하지만 서울의 노숙자는 노숙자이지 방랑자가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 서울의 노숙자는 그들 대부분이 특정질환에 시달리는 이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자활경제능력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탈리아의 보헤미안과 서울의 노숙자는 이전 점에서 다릅니다.

 한편 수많은 이들이 뒤엉켜 사는 서울은 위험한 곳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이들 중에는 간혹 소매치기와 같은 아주 나쁜 행동으로 삶을 잇는 이들도 간혹 있습니다. 요즈음 그들 중에는 보다 더 대담하게 행동하는 이들도 있긴 합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사람을 적극 유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숫자는 적어며, 아주 특수한 이들입니다.
보통의 서울사람은 다들 자신의 일에 열중하며 부지런히 삽니다. 그래야만 보통사람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사람들은 서울에 대해 말할 때 시간이 곧 돈인 곳이라고 말 합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만큼 서울사람들의 일상은 바쁩니다. 이런 일은 서울에 사는 이들에게만 꼭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평균적으로 말할 때 그렇습니다.

 저도 바쁜 일상으로 늘 쫒기 듯 삽니다. 그런데도 부자로 살지 못합니다. 이는 내가 타고난 복 때문일 것입니다. 하는 일마다 돈을 부르는 이가 있는가하면, 하는 일마다 돈을 쫒는 이도 있습니다. 사람의 이 같은 일생을 두고 우리는 ‘타고났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아는 장 사장은, 이제 다들 그를 장 회장이라고 부릅니다, 운이 정말 좋은가 봅니다. 하는 일마다 대박이라 하더군요. 사실 서울은 돈이 매우 많은 곳입니다. 그렇다고 돈이 길거리에 늘려 발밑에 밟힌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쩌면 늘려 있다고 해도 좋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곧 돈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은 어느 곳에서나 사람, 곧 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연히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 돈을 쉬이 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도 기능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앉아서 발품을 파는 이도 아주 많은 곳이 서울입니다. 서울의 직업은 그만큼 다양합니다. 농촌에서 돈을 벌자면 오로지 농사를 짓는 일뿐입니다.

하지만 농사짓는 방법이 달라짐에 따라 농촌사람들의 삶의 양태 또한 많이 변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도로사정이 바뀌고, 이동수단 또한 바뀌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주요 생계수단을 농산물로부터 얻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농작물 생산에 자신들이 가진 노동을 거의 대부분 투여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농부인 것이지요. 그렇지만 요즈음 농부의 모습과 농촌 모습은 옛 날 농촌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집집마다 자동차가 넘칩니다. 급기야 자동차를 타고 논물을 보러 나가기도 합니다. 이처럼 농촌의 일상 또한 과거와는 많이 다릅니다.

앞서 말한 농사법이 바뀜으로서, 곧 경운기 트랙터가 이제 농부의 노동력을 상당부분 대신하는, 기계화된 농촌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 만큼 농촌에 사는 농부도 이제는 노동의 여유 속에 있습니다.

 서울사람들이 한 때 서울에 산다며 뻐기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있다면, 이제 그는 아주 구식의 옛날 행동을 하는 낡은 사람입니다. 지금 농촌은 기존의 벼농사에서 벗어나 부가가치가 큰 각종 특수작물 제배에 주력합니다. 이 또한 농부와 농촌의 모습을 바꿔놓는 전기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농부의 삶이 반드시 행복하다거나, 농촌생활이 행복을 반드시 짓는다고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어찌되었던 육체노동은 참으로 고됩니다. 농촌 삶이라는 것이 제아무리 기계화 영농이 실현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렵습니다. 농부의 육체노동 없이는 그 어떤 농작물도 제대로 수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지금 도심 속 작은 공원을 바라보며 이 글을 씁니다. 가끔씩 오토바이 지나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그 때를 제외하면 어느 한적한 시골의 느티나무가 서 있는 납의 정경과도 같습니다.

키 큰 소나무가 조는 듯 서 있고, 그것에 높이를 견주듯 둥근 등을 매단 가로등이 고개를 숙여 마치 사색에 잠 긴 듯 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두 풍경은 분명히 서로 다르나 적막을 짓는 정경만은 같습니다.

 나는 지금 2층 사무실에 앉아 그들을 바라다보며, 그리운 사람을 떠올립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의 인생유전을 이야기하던, 새로 사귄 유 사장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고맙게도 일찍 자리를 떠 줍니다. 고즈넉해 진 사무실내와 실외 풍경이 동시에 어우러져 바깥 풍경에 더 쉽게 매료됩니다, 나는.

 이 풍경은 이내 나를 초등학교 다니던 때 등하교길 중간쯤에 위치해 있던 ‘늘 밭’으로 안내합니다. 그 곳에는 제 키 보다 10배는 더 큰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습니다. 

우리는 학교를 오가는 동안 자주 키 큰 소나무를 껴안고 솔잎 새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을 늘 올려다보곤 했습니다. 그 때 마다 넋을 놓은 것은 우리들이 아니라 우리들 눈에 내린 파란 하늘이었으며, 빛과 함께 우리들 얼굴에 내리던 솔바람이었습니다. 그 둘은 우리가 그곳을 떠나기 전에는 기어코 떠나는 법이 없습니다.

저 만큼 그대가 먼저 나서 나를 부르면 하는 수 없이 나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만큼 늘 밭과의 작별은 아쉬운 것이었습니다.

떨어지지 않은 발을 억지로 옮겨 길나서면, 이산 저산 산 중허리에 연 붉은 빛 얼굴로 수놓듯 앉은 그 대, 그 댈 떠올리면, 밀려드는 그리움에 오히려 내 얼굴이 먼저 상기됩니다.

 앞서 말했지만 서울생활은 정말 바쁩니다. 그래서 나는 한 때 동경의 대상이던 그대를 내 앞에 놓인 도심 속 작은 공원에서 비로소 발견합니다. 지금은 잊혀 자칫 영원히 잊힐 뻔 했던 그 때와 그댈 다시 떠올리며 그리워합니다. 그리움이 물밀듯 일자 그댈 본지 정말 오래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댈 본 지 정말 오래입니다. 그 만큼 그대가 더 그립습니다. 새 봄, 새 빛과 함께 찾아 든, 깊이를 알 수 없는 이 그리움, 이 그리움을 삭실 방법이 없습니다. 봄바람 그쳐 햇살 따사로운 날, 나는 그댈 만나려 먼 길을 나서려 합니다.

그 댈 만나면, 나는 덥석 붉은 햇살 앉아 홍조 띤 그대 볼에 입을 맞추렵니다. 그 때 내 얼굴에 번질 홍조를 생각하다 그만 생각을 헛딛습니다. 생각을 헛디딘 탓에 저는 그만 그대의 붉은 입술에까지 입을 맞춥니다.

우리의 입 맞춤은 광활한 대지에 온 갖 생명과 영원한 그리움을 짓습니다. /<수필가 정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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