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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12-04 14: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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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다.
창조가 시작된다.
멈춤의 간극에서 새로운 창조가 태동한다.

어둠이다.
밝음이 시작된다.
어둠의 교차에서 환함이 펼쳐진다.
천지창조란
멈춤과 어둠의 떨침이다.

심장이 멎었다.
운악산에 압도당한다.
뜨거움이 얼어붙은 것이다.
다시 박동하지 못한다 하여도 억울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운악을 보았으니 말이다.

의식이 멈췄다.
운악산에 강타당한다.
정신이 풍경속으로 이탈한 것이다.
다시 깨어나지 못한다 하여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운악을 품었으니 말이다.

천지창조.
운악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경이다.
심장이 다시 박동한다.
나는 따뜻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의식이 다시 깨어난다.
나는 겸허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미간을 찌푸린다.
화가 치민 것이 아니라 세세하게 보기 위하여서이다.
건성이 아니라 음미하기 위함이다.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눈썹바위이다.
사방을 에워싼 나무들이 바위의 호위병같다.
눈썹바위가 인간의 마음을 읽었는가 보다.

눈썹바위가 사람처럼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호위를 받아 지켜야할 엄중한 밀명이 있는가 보다.
어느 누구도 산에 들지 못하게 하라는 것인가 보다.
길목 지키는 눈썹바위가 사뭇 근엄하다.

눈썹바위에 아랑곳 않는다.
바위의 등줄기를 타고서 걷는다.
눈썹바위의 정상능선에 털썩 앉는다.
그 온화함이 체온같다.
그곳에 잠시 잠들 수 있다면,
천년의 시간에 감전될 것이다.
천년의 세월동안 의연한 눈썹바위인 것이다.

목조전망대에 선다.
그 난간이 견고한 까닭은
붙잡고서 의탁하라는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병풍바위이다.
수평의 펼침이 백만대군같다.
수직의 펼침이 마천루같다.

꿈이라면 깨어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눈썹바위가 미간을 찌푸리고서 지키려한 것이 바로 이 장엄함이었던가
눈썹바위가 길을 가로막고 훼방하려한 것이 바로 이 웅대함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멈춤과 어둠을 물리친 천지창조인가 보다.
전망대의 난간이 튼실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만 천지창조의 불랙홀로 사라졌을 것이다.
나는 형언할 언어를 잃고서 신음처럼 외마디 부르짖는다.
“미증유”

미륵바위이다.
미륵바위가 땅에서 터 잡아 솟아 오른 것이 아니라
미륵바위가 허공에 먼저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바위결의 문양이 위에서 아랫방향이 그 방증이다.
허공에 심은 미륵바위가 뜻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기둥바위들이 바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륵바위란,
하늘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살피는 것이다.
허공에 우뚝 솟은 미륵바위가 인간을 닮아 보이는 까닭이다.
가파른 바위난간에서 마주 앉았다.
미륵바위에 눈을 맞춘다.
차마 바로 뜰 수가 없어 지그시 눈을 감는다.
얼마나 흘렀는지 시간조차도 잊었다.

휘익 언덕구비를 돈다.
그곳에 아늑함이 머물러 있다.
쓰윽 깎아지른 가파름을 오른다.
그곳에 소통의 바람결이 상존한다.

만경대로 오르는 길이다.
제법 수고로움을 다하여야 오를 수 있다.
성벽같은 폼새의 만경대이다.
만경대는 공고한 성벽이 되어 아늑함과 소통을 지키려는가 보다.

마치 응달인 듯,
잔잔한 어둠의 배경 속에 있는 광경이다.
서광인 듯 하늘에서 내리는 한 줄기의 빛이다.
그 조차도 만경대의 장엄함에 빨려 들어간 것이다.
숙연하고 또 숙연하여진다.
태양의 빛조차도 소멸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다시 환한 빛이 감돈다면,
그곳에서 천지창조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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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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