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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11-02 10: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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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판단이니, 정치적 해석이니 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 우리 헌법 및 헌법재판소법상의 근거 규정 그 자체를 놓고 해석해 보기로 했다. 사심 없이 냉정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 헌법 제111조제1항제4호는 "국가기관 상호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권한쟁의심판"을 헌법재판소의 관장사항으로 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법 제61조 내지 제67조에서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법 제66조는 "① 헌법재판소는 심판의 대상이 된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관하여 판단한다. ② 제1항의 경우에 헌법재판소는 권한침해의 원인이 된 피청구인의 처분을 취소하거나 그 무효를 확인할 수 있고, 헌법재판소가 부작위에 대한 심판청구를 인용하는 결정을 한 때에는 피청구인은 결정취지에 따른 처분을 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미디어법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근거법령에 반하는 결정을 함으로써 혼란을 초래하고 말았다.

즉, 헌법재판소는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관한 판단(이론적 논거는 생략하지만, 이는 해석상 '권한침해 여부'에 해당한다) 외에, 그 권한침해의 원인이 된 피청구인의 처분을 '취소결정' 또는 '무효확인결정'을 할 수 있다(부작위 부분은 논외로 한다)는 명문의 규정에 반하는 결정을 하여 스스로도 난해할 정도의 혼란을 초래했다.
헌법학자도, 법률가도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하고 만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필자의 비판은, 헌재는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관하여 판단하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규정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이 헌재법 제66조제1항의 취지이다. 다시 말하면, 헌법재판소는 우선적으로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대한 판단으로 그 임무를 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동조 제2항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헌재법 제66조제2항은 앞의 판단(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을 한 후, "2차적으로" 더 필요한 때에는 그 권한침해의 원인이 된 처분을 취소 또는 무효확인하는 결정을 할 수 있음을 정하고 있다.

동조 제2항의 의미는 제1항의 결정이 인용된 경우에 비로소 그 필요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진 후, "필요하다면" 그 원인처분의 '취소'결정 또는 '무효확인'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진 후, 그 원인처분의 하자가 중대하지 아니하여 '기각'하거나 '유효'하다는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청구인의 국회에서의 "표결권한이 존재한다" 또는 "존재하지 아니한다"(범위는 논외로 한다)는 주문으로 그치거나(즉 표결권한의 침해 또는 비침해), 아니면 "표결권한이 존재한다.

그 원인행위인 법률안을 취소 또는 무효확인한다"는 형태의 주문만을 했어야 했다(즉, 1. 표결권한의 침해. 2. 법률안 취소/무효확인). 이것이 앞에서 본 제66조제1항과 제2항의 입법취지에 따른 올바른 주문선택의 방법이다.

여기서 "표결권한이 존재한다."(표결권한의 침해)고 하면서 법률안의 취소 또는 무효확인을 부정하거나(즉, 기각 또는 유효), "표결권한이 존재하지 아니한다."(표결권한의 비침해)는 주문을 채택하면서 법률안의 취소 또는 무효확인을 하는 것은 동조의 입법취지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표결권한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한 때에는 - 법률안의 효력까지 적극적으로 선언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 법률안의 "취소/무효확인"만을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표결권한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법률안의 취소/무효확인을 부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표결권한의 존재" 즉 표결권한의 침해 결정을 하는 때에는 그 결정은 입법권자인 국회에 '재표결명령' 내지 '재입법명령'을 해야 함을 내포하는 것이고(국회에 의한 재입법이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표결권한의 존재(표결권한의 침해) 결정과 함께 법률안의 취소/무효확인결정을 하는 때에는, 입법권자에게 그러한 재입법절차의 이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때에 해당하여 부득이 헌법재판소가 직접 당해 원인행위인 법률안을 직접 취소/무효확인을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청구인의 표결권한의 존재 즉. 표결권한의 침해 결정을 하면서도 당해 사건을 기각하거나 그 원인행위인 법률안의 유효 판단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자가당착적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

헌법재판소의 권력 눈치보기는 우리나라의 의회주의와 법치주의를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번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스스로 국회의 입법절차에 대한 통제권한을 포기하고 말았다.
본회의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날치기는 치기어린 어린아이들의 장난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헌법재판소가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는가.


[덧붙이는 글]
오래전부터 권한쟁의심판 제도에 큰 관심을 가져왔던 필자로서 이번 사건을 보며 헌재에게 큰 연민의 정을 느낀다. 헌법재판소에서 오랜 재직경력을 가진 필자로서, 1989년 단행본으로 출간한 "권한쟁의심판제도에 관한 연구"(헌법재판연구 제9권)의 관련 부분을 일독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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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독일 뮌스터(Muenster)대학교 법과대학(법학박사), (현)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위원, 국회 입법지원위원, (현)한국지방자치법학회/한국토지공법학회/한국비교공법학회 부회장, (전)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보, 동아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한국공법학회 연구이사, 사법시험(2005, 2007) 및 행정고시(2003, 2001) 2차시험위원,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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