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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08-09 01: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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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교 직업평론가 ,칼럼니스트
고대 올림픽에서도 우승한 직업 선수들에게 연금이 주어졌는가? 그렇다.

그리스 올림피아 신전의 제우스신에게 바치는 제전으로 시작된 고대 올림픽에서도 우승자에게 연금이 주어 졌다. 우승자에게 월계관과 500드라크마의 현금, 평생 연금이 주어 졌다.

1200년간 293회,4년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치러진 고대 올림픽에서. 하지만 이것이 상업주의 모습으로 올림픽을 변질(變質) 시킨 씨앗이 된다. 이런 씨앗은 근대 올림픽을 상업 주의방향으로 전진하게 만들었다.

고대올림픽을 열던 시기는 기원전 776년..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엘리스파에서 시작된 체육 행사는 바로 여성들은 참여를 제한한다.

주로 발가벗은 남성들이 고대 올림픽 경기에 출전한다. 이것이 경기규칙이었다.
유니폼 디자이너는 돈을 못 벌었으리라는 상상이 든다.

이들은 출전해서 우승하면 월계관을 머리에 부여 받는다. 그들은 전사요 승리자라고 평가된다. 인류는 한번 만든 이런 제도를 통해서 서로간의 평화를 만들어 간다.

하기야 전쟁을 하다가도 올림픽 경기가 시작되면 3개월을 전쟁을 쉬는 그런 전통을 만들어 가면서 이들은 바로 고대 올림픽을 만들어 간다. 그 후 고대 올림픽은 중단된다. 그리고 무수한 세월이 흐른다.

프랑스인 쿠베르탱 남작(Pierre de Coubertin)은 프로이센과 프랑스 전쟁 후에 프랑스 회복을 위해서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하지만 극심한 전쟁의 고통을 그는 인식한다. “ 평화로운 지구를 위해 뭐가 없나?” 그는 고민한다.

사람들의 마음의 폐부를 파고드는 전쟁이 주는 고통의 씨앗을 절감한 그는 불필요한 전쟁을 한 프랑스와 프로이센 민중들. 그들에게 평화를 주는 이벤트를 만들자고 다짐하고 다짐한다.

인간들의 속성상.겨루고 싶은,더러는 싸우고 싶은 욕망(慾望)을 승화할 그 무엇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 한다. 쿠베르탱 남작의 이런 고민은 전쟁대신 스포츠를 통하여 경쟁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그로 하여금 국제 여론에 호소, 다시 올림픽을 부활하게 만든다. 그것이 근대올림픽의 효시(嚆矢)가 된다.

프로이센과 프랑스 전쟁이 1870-1871년 사이에 치러진 후.인류의 어리석음을 지혜로 이끌기 위한 그 무엇을 쿠베르탱의 이런 고뇌(苦惱)는 잉태하게 한것이다. 그것이 바로 근대올림픽의 발아(發芽) 점이 되게 한다.

근대 올림픽 대회는 1896년에 드디어 고대올림픽의 발상지 아테네에서 올림픽 1회 대회를 하게 한다. 쿠베르탱은 프랑스가 다시는 오해에서 시작된 전쟁의 굴레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위한 염원으로 2회 대회를 파리에서 열게 한다.

좋은 지구촌을 만들고 싶은 의지에서 시작한 근대 올림픽이지만 이들은 자국에 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야 말로 자국의 관광 이익과 자국의 홍보와 상업적인 이익에 도움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 한다.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2008.8.8-8.24 일까지 열리는 올림픽은 더욱 이런 상업주의가 만연할 것이다. 중국의 하이얼이라는 전자 회사의 전자 엔지니어들은 그들의 직업적인 공간과 홍보 기회를 열정적으로 활용하는 중이다.

그들은 비즈니스에서 성공 하기위해서는 올림픽이야 말로 최고의 기업을 알릴 이벤트 찬스로 생각 한다. 코카콜라는 미국 회사 중에서도 브랜드 가치가 가장 높은 회사 중의 하나다.

그들은 올림픽을 통해서 자기회사 브랜딩을 하고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일에서 성공한다. 올림픽에서 가장 할일이 느는 직업 중에는 물론 브랜드메니저라는 직업인이 있다.

그들은 브랜드 가치를 고양하는 기술을 올림픽에서 지구촌 모든 국민들이 모인 곳에서 , 28개 종목 302개 세부 종목의 베이징 올림픽에서 활용할 것이다.

한국의 삼성 전자도 지금 중국 베이징에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비즈니스를 열정적으로 하는 중이다. 이들은 13억 중국에서 노키아라는 유럽의 핸드폰 회사가 만든 핸드폰이 중국 시장에서 판매 1위를 하는 상황을 역전 시키려는 야심을 표출하는 중이다.

삼성전자는 이제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중국에 소비자들에게 그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최대한 알리는 일을 할 것이다. 물론 올림픽 후에 삼성 전자가 노키아보다 중국에서 핸드폰을 더 많이 판매, 1위의 매출을 올리는 그런 회사 비즈니스 성취를 이룰지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아무회사나 올림픽 현장에서 홍보하고 광고하면서 비즈니스를 할 찬스를 주지는 않는다.
스폰서 활동비를 올림픽 연관 부서에 내야한다. 기술수준도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과 제1교역국인 중국 시장은 한국에게는 기회다.
지난 세월 속에서 중국에 초등학교를 지어주는등 LG 그룹도 노력을 많이 한다. 이들은 LG차이나를 통해서 글로벌 그룹으로 성장하는 한국인들의 꿈을 이어가는데 땀을 흘린다.

1908년에 중국에서 발간된 ‘ Jianjin Youth'라는 잡지에서 “ 중국의 올림픽은 언제?” 라는 기명 기사를 통해서 염원한지 100년 만에 처음 중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은 한국 기업들에게는 기회일수 있다.

하지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후에 아테네가 성장률이 오히려 저하된 역사를 통해서 보듯, 올림픽후의 중국 경제 상황을 장밋빛으로만 보는 것은 너무 지나친 낙관론이 아닌가 싶다.

아아, 그러나, 100년의 기다림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이몽룡을 기다리면서 변학도의 수청강요를 견디면서 보낸 인고의 세월후의 만남처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중국은 1908년 한 잡지에서“ 중국에서의 올림픽 개최는 정녕 꿈이란 말인가. 라고 설파한 이래 그 꿈을 이룬다.
스포츠 외교관들은 분주히 움직인 후에 나타난 열매였던 것이다.


중국 국가 통계국( NBS)는 말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에 약 300억불의 경제이익을 가져올 것이라고 한다.

전망대로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전망에 다소 거품이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24회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은 순수하게 26억불의 경제이익을 보았다는 팩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와 지금은 물가수준과 국가차이도 존재하는 그런 변수는 있을 지라도.조선족 여학생으로 한국에서 유학중인 Y양은 말한다. “ 올림픽은 중국에게는 경제 발전의 주요한 찬스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도전도 만만치가 않다. 중국이 경기장을 짓느라고 과도한 비용을 지출한 후의 국가 비용 부담도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이 올림픽후의 중국 의 일시적인 경기 조정국면은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들이 그것이다.

일시적이긴 하였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근대 올림픽은 세계 여러 나라로 개최지를 변경하면서, 더러는 일부국가에서 해당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백성의 질고(疾苦)를 감추는 수단으로 올림픽을 활용하거나, 정치적인 정당성 결여를 올림픽 개최로 덮어버리려는 정치적인 야합을 하게하는 도구로도 작용하게 한다.

올림픽의 시초는 순수하였지만 사람들은 상업주의의 오염된 파도로 올림픽을 더러 감싸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올림픽의 순수한 정신을 일시에 훼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림픽의 순수한 영혼을 이들이 장기적으로 발전시키고 평화 지향의 정신을 활용하는 데는 한계를 곧 드러낸다.

쿠베르탱이라는 역사를 고민하던 프랑스의 한 청년에 의해서 근대올림픽은 이제 국가 융성의 주요한 이벤트가 되었다. 우리는 이런 추세 속에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맞으면서 무엇을 정책적으로 고민 할 것인가?

한국에서 스포츠 레저부(部)를 국가의 조직으로 만들고, 스포츠 외교를 강화하는 국가 전략. 이것을 장기적인 정책과제로 설정해서 연구하기를 바란다.

스포츠산업은 이제 국부 창출의 주요한 원천 산업이 될 미래가 다가오기에 더욱 그렇다. 2008년 한국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10위권에 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국가 스포츠를 산업으로 육성하는데 성공하여 국부를 창출하는 근원적인 노력을 기울려 가는 것이 주요 정책과제다.

4회 연속 국제경기에 참가하면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적이 있는 이봉주 선수는 2008.8.24일 오전 8시 30분에 풀코스에 도전한다.

그가 다시 마라토너라는 직업인으로서 돋보이는 이유는 인간의 체력 한계 상 두 번 이상 올림픽 같은 대 경기에서 풀코스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의 나이가 벌써39세라니 말이다.

왕하오라는 중국의 탁구스타의 이면 타법을 이기고 우승한 유승민의 저력, 그리스 선수를 발차기로 이기고 우승한 80 kg 이상급의 문대성 선수 같은 패기를 드러낸 2004년의 아테네 올림픽이 생각 난다.

이제 이런 희망들을 한국의 박태환, 이봉주에 등에 걸어 보고 싶은 시간이다.
( nnguk@yonsei.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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