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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05-25 09: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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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런티어타임스' 이태준 논설실장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70년대를 '암울한 군사독재시절"이라고 하기도 하던데 내가 살아온 지난 시절에서 70년대야말로 단군이래 가장 역동적이고 활기에 넘쳤던 시절이라고 나는 항상 자신있게 말한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빨랐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생활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고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나도 아파트에서 자가용차를 몰며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으리라는 꿈을 품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지금은 내일에 닥칠 막연한 불안에 떨며 88만원 세대라는 내 자식들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으니 70년대를 "암울한 군사독재시절"이라고 매도하던 사람들의 눈에는 지금의 암담한 시절이 어떻게 보이는지 그게 무척 궁금해진다.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시절이 암울한 시절 아닌가?

아무리 자판을 두드리며 떠들어봐야 언발에 오줌누기요 계란으로 바위치기니 마음통하는 친구들이랑 소주잔 기울이며 이 연속적으로 암담한 긴 역사속에서 우리가 운좋게 누린 행운에 대해 감사하며 현실을 잊을려 한다.

수십년간 뻬놓지 않고 보던 9시 TV뉴스도, 새벽마다 내 집에 배달되는 조간신문도 나몰라라하고 그 대신 케이블TV프로를 뒤지며 볼 만한 프로를 찾아내 시간을 떼우다 최근엔 옛날 영화를 보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르니 이렇게라도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내 팔자도 그런대로 제법 괜찮지 않은가?

참 좋은 세상이다.
거실에 앉아서 지난 날의 영화 명작들을 마음대로 골라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특정매체를 선전한다고 오인할 수도 있으므로 매체업체는 거론하지 않겠음)

지금의 젊은이들은 이름조차 들어본 적도 없을 옛날의 명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이는 일인데 영화메니어였던 나도 보지 못했던 명화들을 이제사 보는 재미로 혼자 거실 TV 앞에서 날밤을 새우는 내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좀 우습긴 하다만 요즘의 내 생활이 흘러간 영화 보는 재미에 빠져있다고 고백하는 셈이다.

엊그제 비몽사몽간에 봤던 영화를 어제 오후에 다시 본 것이 "How green my valley was"였다.

처음 들어보는 영화였는데 제목이 별로여서 그냥 넘어갈려다 감독이 '존 포드 '라 무슨 서부영화겠지 하고 시작 버튼을 눌렀는데 '역마차'로 상징되는 서부영화의 巨匠 '존 포드'답지 않게 가족애를 다룬 영화였고 영화제작연대가 41년이라는 字幕으로 보건데 '존 포드'감독의 초기작품일 것으로 생각된다.

무대는 영국 웨일즈 지방의 산간오지마을로 이 산촌에 석탄을 생산하면서 마을은 자연히 탄광촌이 되었는데 마을 전체가 탄광 하나에 메달려 살아가는 가난한 산골사람들의 일상과 시대환경에 따라 가족들이 하나씩 흩어지는 과정을 그린 가족영화다.

사회변화를 있는 그대로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주입하지않고 보여지는 그대로 투영하면서 현실을 긍정적으로 그려내는 솜씨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해"를 연상케 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궁금한 것이 저것이 어느 때였는지 하는 年代문제였는데 美國영화를 보면 어렵지 않게 어느 지방 어느 시대로구나 하고 알아먹는데 英國영화를 볼 때는 지역도 모르겠고 연대도 알기 어렵다.
알게 모르게 미국은 너무 친숙한 나라가 되어버렸고 영국은 낯선 나라로 자리잡고 있는 모양이다.

女王의 초대장을 받고 감격해 하는 장면으로 봐서 빅토리아여왕시절이라는 건 쉽게 알아차렸는데 빅토리아여왕은 무려 64년간이나 왕위에 있었으니 19세기 중반인지 후반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영화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勞組설립문제로 다투는 걸로 봐서는 19세기 후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내가 이런 유럽 영화를 즐겨 보는 이유는 그 당시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관습, 생활양식을 보고싶어서인데 영국은 미국에 비해 아무래도 많이 낯설다.

모건家는 전형적인 웨일즈지방의 가난한 평민집안으로서 家長인 모건氏는 독실한 개신교신자이면서 영국왕실에 대한 존경심도 대단한 전형적인 영국의 모범시민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다.

나이 60쯤 된 모건氏에게는 장성한 다섯 아들과 예쁜 딸 하나 그리고 이제 겨우 열살쯤 된 된 늦둥이 아들 하나 그래서 7명의 자식에다 남편을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는 나이 든 老夫人으로 구성된 9명의 평범한 집안이다.

아버지 모건씨와 장성한 다섯 아들 이렇게 6명이 같은 탄광에서 석탄를 캐는 광부로 살아가는데 영화는 나이 어린 늦둥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으로 전개된다. 단란하고 성실하고 신앙심 높은 모건家에도 어느 날 갈등과 반목이 일어난다.

탄광主가 일방적으로 급료를 깎아내림으로서 장성한 네 아들은 불만을 토로하며 탄광주의 일방적 횡포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을려면 勞組설립을 추진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아버지는 석탄값이 내려 탄광주도 어쩔 수 없어 그랬을 것이라며 勞組설립에 반대한다.

마을의 유지이기도 하고 탄광노동자의 대변인격이었던 모건씨의 이런 태도에 반기를 들고 아들 넷은 집단으로 가출해서 이들은 바로 파업을 결행해 버리고 모건씨는 하루 아침에 동네주민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외톨이가 되고 만다.

그러던 어느날 모건씨의 집에 돌이 날아와 유리창을 깨는 테러가 밠생하고 참다못한 모건의 부인은 남편을 대신해 광원들을 찾아가 남편이 탄광주를 위해서 노조설립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얼음이 깨지면서 늦둥이 아들과 함께 차가운 얼음구덩이속으로 빠져 겨우 주민들에
의해 가까스로 구출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로인해 늙은 부인과 늦둥이 아들은 두 다리에 심한 동상을 입고 몇개월간 누워지내는 신세가 되는데 이를 계기로 가출했던 네 아들도 다시 돌아오고 집안은 다시 옛날의 평온을 되찾게 되나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은 일방적으로 급료를 깎는 탄광주의 횡포를 견디지 못하고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아메리카땅으로 떠난다.

모건씨에게는 아주 예쁜 딸이 있는데 탄광주의 아들이 이 딸에게 청혼을 해서 모두 부러워하는 결혼을 하게 된다. 이 딸은 이 동네에 새로온 목사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탄광주의 아들이 이 딸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목사는 산골마을의 헌금에 의존해 살아가야하는 가난한 목사보다는 탄광주의 아들과 결혼하는 것이 낫다며 모건씨 딸의 적극적 접근을 거부하고 딸은 탄광주 아들과 결혼한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마을엔 그 젊은 목사와 모건씨 딸이 눈이 맞아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져나가고 이 일로 결국 딸은 이혼하고 목사는 마을을 떠나게 된다.
그런 일이 없었는데도....

이런 와중에 장남인 첫째 아들이 갱구로 들어가는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뒤이어 셋째 넷째 아들도 탄광에서 해고되어 일거리가 없는 탄광을 떠나 셋째는 카나다, 넷째는 뉴질랜드로 일자리를 찾으로 떠난다.

이제 집에는 늙은 모건 부부와 늦둥이 아들 밖에는 없다.
아버지와 아들은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아들 넷이 있는 지역을 가리키며 혈육을 그리워하나 어머니는 다 소용없는 일이다 내 자식은 이 집에 있고 내 마음속에 있다며 애써 지도보기를 외면한다.

늦둥이 아들 하나만은 공부를 잘 시켜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는 늙은 아버지의 바램과는 달리 이 어린 아들은 탄광夫로 일하러 가겠다고 고집한다.

결국 어린 나이로 석탄캐는 광부가 되어 온 몸이 콜타를 칠한 것처럼 새까맣게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 시작된다. 그의 형들이 그랬던 것처럼......
작은 체구의 늦둥이가 석탄을 캐고 석탄차를 밀며 땀흘리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 아프게 한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영광 뒤에는 그런 어두운 일면도 있었던 것이다,
한창 자라야할 그 어린 나이에 석탄가루를 마시며 하루 14시간의 중노동을 해야한다니 150년 뒤 그 당시의 장면을 보는 내 가슴이 아파오니 우리가 참 좋은 세상에 사는 모양이다.

단란했던 모건씨의 가정은 이렇게 4명의 아들이 멀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고 늙은 부모와 막내아들만 남았으나 이것으로 불행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나이든 몸으로 성실하고 변함없이 탄광에서 일하던 모건씨 마저 어느날 무너내리는 막장의 흙더미에 깔려 죽음으로써 이제 늙은 부인과 막내 아들만 남는다.

나이든 그 부인도 늙어죽고 그 늦둥이도 나이 50이 되자 이제 남은 혈육은 아무도 없다.
형들이 다 떠나도 나는 이곳에 남아있을거라던 그 꼬마도 남은 인생의 가치를 생각하면서 정든 고향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도 평소 그의 어머니가 시장에 장보러갈 때 사용하던 낡은 보자기를 꺼내 몇가지 제 물건을 챙겨 고향을 떠난다. 남은 것은 봄이 오면 어김없이 하얀 수선화가 피어나던 고향 계곡의 푸르름 뿐이다.

아메리카로, 카나다로 그리고 뉴질랜드나 오스트랠리아로 떠날 수 있었던 그 사람들의 처지를 부러워해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정든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처지를 동정해야하는 것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신대륙이 없었다면 과연 그들의 남은 인생은 또 어떻게 펼쳐졌으며 대영제국의 영광은 또 어떻게 되었을지 그것도 궁금하면서 이 작은 나라를 떠나지 못하고 무엇을 얻기 위해 증오와 적개심으로 충만해서 싸우고 있는 우리보다는 선택의 폭이 넓다는 점에서 웨일즈 광산촌의 광부들의 삶이 그래도 우리보다는 낫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한번 떠나면 다시는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없고 죽음으로 이별한다고 해도 그 소식조차 듣기 힘든 저 멀리 신대륙으로 떠나는 이별의 연속..... 그리고 이런 이별을 말리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이는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
마지막까지 고향을 지키다 결국 그도 영원히 고향을 떠나는 막내아들...

영화는 우리가 무엇때문에 살아야하는지를 오래동안 생각케 했다.

What am I living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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