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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02-28 19: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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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대략 7년 전쯤에 디테일경영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왕중추가 쓴 책 이름이기도 한데, 그것을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출신 정연주 kbs 사장체제에서 기자 논술시험문제로 출제한 적이 있었다. A급인재들은 그 당시 좌파언론인, 또는 좌파지식인들 입에서 디테일경영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失笑를 금할 길이 없었다.

좌파언론인 정연주씨가 디테일경영 어쩌구 하길래, 서점에 가서 그 책을 찾아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그것은 바로 `완벽주의`에 대한 이야기였다. 완벽주의라는 덕목은 한겨레신문 기자나 논설위원, 기타 좌파지식인들과 같은 B급 인재들이 감히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연주 사장은 자기 주제를 모르고 `완벽주의` 운운한 것이다.

디테일경영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디테일에 주목하고 심혈을 기울여라`라는 말뜻은 `무결점으로 만들어라 또는 완성도를 극대화시켜라`라는 의미이다. 이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예가 바로 퇴고(推敲)의 고사이다. 이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므로 재차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여 그냥 인터넷 백과사전에 올라와 있는 자료를 인용하겠다.

가도(賈島)가 처음 과거를 보러 서울에 가던 길에 하루는 나귀 등에서 ‘새는 못가에 있는 나무에 깃들이고 중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라는 시구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推’ 자를 쓸까 하다가 다시 ‘敲’ 자를 쓸까 하며 결정을 못 하고 나귀 위에서 때때로 손짓으로 밀거나(推) 두드리는(敲) 동작을 하니, 보는 사람마다 이상하게 생각했다. 때마침 경윤(京尹) 벼슬에 있던 한유(韓愈)의 행차를 만났는데, 가도는 그 행차 대열의 제3열 안에까지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좌우의 사람들이 가도를 붙들고 한유의 앞에 끌고 갔다. 가도는 시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유는 말을 세워놓고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가도에게 ‘敲’ 자가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敲’로 정하였다.

업무 보고서나 논술문, 작품등을 만들어 낼때 우리는 보통 퇴고의 과정을 거친다. 처음에 일단 만들어 낸 결과물을 A라고 할때, 그것을 손질해서 보다 더 나은 결과물인 B로 만들고, 그런 과정을 재차 실행해서 더 나은 결과물 C로 만들고 하는 작업 말이다. 이해를 쉽게하기 위해 편의상 수치로 나타내보자. 70점 짜리로 잘 손질해서 82점짜리로 만들고 재차 손질해서 91점짜리로 만들고 그것을 극대화시켜 마지막에는 100점짜리로 만드는 것이다. (70점짜리 결과물-> 82점짜리 결과물 -> 91점짜리 결과물 -> 100점짜리 결과물)

`70점짜리 결과물`에서 `82점짜리 결과물`로 만들었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전자와 후자를 비교하여 그 차이만큼 업그레이드시켰다는 뜻이다. 좀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을 우리는 퇴고 과정을 거쳐 결과물을 좀 더 훌륭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 자리에 들어갈 시어로 `推`字보다는 `敲`字가 더 낫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고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나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다.

가도(賈島)는 자기 작품인 A결과물(퇴자가 들어간 시)와 B결과물(고자가 들어간 시) 둘중에서 B결과물이 더 낫다고 선별한 것이다. 이처럼 A,B,C,D,E의 우열을 비교하고 끊임없이 선별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보다 더 높은 수준(경지)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일을 자주 하다보면 자연히 작품(또는 결과물)을 보는 안목이 생긴다. 즉, 이 작품보다는 저 작품이 더 낫다는 평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이와 유사한 대목이 나온다. 모짜르트가 궁정에 들어가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복도를 지나간다. 그러던 중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듣는다. 모짜르트가 그 방을 찾아갔더니 황제와 신하, 궁정음악가가 피아노 주위에 모여 있었다. 모짜르트는 황제에게 인사를 하고 피아노 의자에 앉더니, 방금 연주된 피아노곡을 똑같이 재연해 보인다.

황제를 비롯한 사람들이 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데, 모짜르트는 그 자리에서 이 피아노 곡의 어느 소절에 대해 "여기는 이렇게 하는 것보다 이런 게 더 나을 듯 싶네요"하면서 자신이 즉석에서 그 소절을 작곡하여 연주해 보인다. 주위사람들은 모짜르트가 수정한 그 소절에 대해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즉, 모짜르트는 원곡과 비교했을 때 차별적 우위를 만들어 작품의 수준을 더 높이 끌어올린 것이다. 이런 방식이나 태도로 작품을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우리는 완벽주의라고 부른다.

예전에 한겨레신문의 필진중에 김선우라는 여류소설가가 있었다. 그는 예술작품에는 다양성만 있을 뿐이지 작품수준의 차이란 없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좌파지식인들의 상당수가 그런 주장을 편다. 그의 주장은 누가 어떤 작품을 만들던 그 작품은 다 똑같은 평가를 받아야지 어떤 작품은 명작이라고 말하고 어떤 작품은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말해선 안된다는 취지이다. 즉, 결과(물)의 평등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처럼 좌파지식인들의 정신세계는 공산주의 마인드로 세팅되어 있는 것이다. 삼라만상이 다 이런 식이다.

김선우 소설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짜르트가 즉석에서 "이 소절은 이대로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하는 게 더 나을 듯 싶네요"한 대목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김선우씨의 논리대로 한다면 "작품에는 우열이 없는 데, 왜 니 맘대로 이게 더 좋다고 말하느냐"하고 항의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항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좌파지식인들의 논리대로라면 퇴고의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다. 왜냐 자신이 일단 만들어낸 결과물 A와 손질을 해서 만들어 낸 결과물 B 역시 평등(같은 수준이라는 평가)하기 때문이다.

좌파지식인들은 이런 헛소리를 평소에 많이 지껄인다. 그들의 주장들을 유심히 들어보면 그 논리의 기저에는 공산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작품 수준의 고저를 논하거나 또는 등수를 매기면 좌파지식인들은 경기를 일으킨다. 좌파지식인들은 비교해서 점수를 매기거나 우열을 선별하는 행위를 악으로 본다.

완벽주의는 두 대상을 비교하여 차이를 알고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나가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데, 좌파들은 비교하여 우열을 논하면 안된다고 우긴다. 좌파들은 자기네가 떠들고 있는 디테일경영(완벽주의)라는 개념이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좌파사람들은 디테일경영이라는 개념이자기네가 여태까지 떠들어온 논리들과 서로 모순된다는 사실도 모른다.

완벽주의라는 것은 천재나 大家 또는 초고수 정도 되어야 입에 올릴 수 있는 덕목 내지는 작업태도이다. 그들이 완벽주의를 강조하고 그런 덕목이나 자세를 가져야 한다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런데 B급 인재 더 나아가 늘 찐따짓만 하는 한겨레신문 출신들이 그런 말을 들먹이니 아니 웃을 수 없는 것이다. 누가 누굴 가르치겠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링 위에 올라가면 맨날 져서 10전 1승 9패의 전적을 가지고 있는 3류복서가 신화적인 복서 파퀴아오에게 "야 스트레이트는 이렇게 하는 거야. 어깨에 힘 빼고 쭉 뻗어. 그리고 훅은 고개를 약간 숙이면서 이렇게 치는 거야 알았지?" 하는 꼴이다.

좌파지식인들은 어디서 하나 주워 듣고 와서 그게 멋있어 보이니까 아무한테나 막 써먹으며 꼰대질을 하려고 한다. 상대를 봐가면서 까불어야 되는데, 아무한테나 늘 이런 식이다. 이런 인간들은 만나면 나도 모르게 혼내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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