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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2-10 22: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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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 적에 심청이가 살았다. 그녀는 착한 소녀였고 이웃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많아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는 일찍 죽었기 때문에 계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계모의 이름은 뺑덕어멈이었다.
 
뺑덕어멈이 심봉사와 결혼하여 심씨 집안에 들어와보니 재정상태가 별로 안 좋았는 데, 그러함에도 콩쥐가 주위 이웃들에게 동정과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터라, 이곳저곳에서 적지않은 경제적 도움이 있어서 그리 살기에 나쁘지 않았다.
 
뺑덕어멈은 심청이를 좋아하지 않았는 데 심청이에게로 답지되는 재물들이 상당한지라, 주위사람들의 평판을 의식하여 그녀에게 자신이 친어머니이상으로 정을 쏟아 키우는 척 하였다. 뺑덕어멈의 연기가 매우 능숙해서 주위의 이웃사람들도 속아넘어갔기 때문에, 뺑덕어멈이 의붓딸인 심청이를 애지중지하여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즉, 뺑덕어멈은 주위 이웃사람들 앞에서는 심청이와 매우 사이가 좋은 것처럼 보였지만, 뺑덕어멈과 심청이 둘 사이에서는 심청이가 뺑덕어멈으로부터 냉대를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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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친박과 친이가 갈려서 첨예하게 대치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 대구근방의 지역구에서 유력한 후보가 두 명이 나왔었다. 하나는 친이후보였는데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나왔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친박후보였는데,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대구 경부지역에서는 한나라당의 공천을 누가 받았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아니라, 누가 朴心을 등에 업고 있느냐가 당선의 가장 큰 변수였다. 다시말해 박근혜의원의 낙점을 받은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선거당락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그 시기에 박근혜의원은 당연히 자신의 계파에 속하는 무소속 출마자를 당선시키기 위하여 대구를 방문하였다. 그러자 친이계에 속하여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접근하였다. 친이계 후보가 박근혜의원에게 악수를 청하고 둘이 마주하게 되자, 옆에 있던 한 기자가 카메라 후레쉬를 터뜨리며 사진을 막 찍으려하던 찰나였다.그러자 박근혜의원은 즉시 해당 기자에게 엄하게 소리를 쳤다. `` 사진 찍지 마라!!`` 매우 단호한 태도로 말하자, 그 카메라를 들이대던 기자가 주춤하였다.
 
박근혜와 친이계 후보와는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사진으로 둘이 다정하게 악수하는 사진이 신문에 나가게 되면  마치 그가 박근혜후보와 친한 사이로 그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친박후보는 낙선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그 선거에서 朴心을 등에 업은 무소속 친박후보가 당선되었다.  박근혜의원이 원하던 바대로 된 것이었다. 

위에서 첫번째 사례는 사회적 강자인 뺑덕어멈이 사회적 약자인 심청이와의 관계에서 있어서 실상은 서로가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 대외적으로는 마치 사이가 좋은 것처럼 위장한 경우에 해당한다.
 
두번째 사례는 사회적 약자인 친이계 후보가 사회적 강자인 박근혜의원과의 관계에 있어서 실상은 서로가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 대외적으로는 마치 사이가 좋은 것처럼 위장한 경우에 해당한다.
 
위의 두 사례는 단 둘의 사이가 좋지 않음에도 대외적으로 마치 둘 사이가 좋은 것처럼 보이도록해서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평판이나 가치를 이용해먹으려는 전형적인 수법에 해당한다. 즉 뺑덕어멈은 심청이의 사회적 평판과 인기를 자신이 그녀의 어머니신분임을 내세워 가로채려는 속셈이 있는 것이고, 친이계 후보는 박근혜후보가 대구지역에서 갖고 있는 사회적 평판과 인기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여 그로 인한 이득을 취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위의 이야기를 왜 거냈느냐 하면 바로 필자의 신세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필자가 2009년도에 한나라 정치대학원에 입학하여 수료한 후, 한 원우로부터 정몽준의원의 팬클럽인 MJ21을 소개받아 가입하게 되었다. 필자가 그 당시 원했던 바는 이명박대통령의 참모인 청와대 비서관이나 행정관으로 가거나 정몽준의원의 보좌관으로 가던가 할 의향이었다.
 
필자는 그렇게 되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자꾸 흘러도 나에게는 자리에 관한 어떠한 제의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흐르자 많이 힘들었는 데, 조그만 더 기다리면 되겠거니했다. 그 이후로도 자리를 얻지 못하고 시간만 흘렀다.
 
사람을 쉽사리 믿고 덥썩 따르긴 했지만, 정몽준의원도 사회의 저명인사인데 설마 이대로 빈털털이 인생이 되게 하지는 않겠거니 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래었다. 계속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자, 필자는 이곳 저곳에 취업원서를 내 보았다. 그러면서 인터넷 논객활동도 했었는 데, 내가 쓴 글들이 사회적인 호평을 받고 이명박 정부를 돕는데 일조하였다. 그 당시 백수로 지내면서도 몇 가지 굵직한 중요 이슈와 여론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1년 영남일보에서 1차 서류가 합격되었다고 2차 필기시험과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실 내 스펙으로는 서류조차 붙기 힘들었음에도 그런 통보가 왔다는 것은 그 신문사에서 나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 곳에 가면 백수생활을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영남일보로 가자니 정몽준의원과 결별해야 하는 것인 데, 떠나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영남일보의 2차시험 및 면접일자와 MJ21의 행사날짜와 겹치게 되었는데, 나는 결국 영남일보 시험을 포기하고 MJ21 행사에 갔다. 인간적으로 그렇게 처신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또 시간이 흘렀는 데, 그 중간 중간에 알게 된 지인들로부터 친박쪽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왔다. 김영선의원을 언급하던 사람도 있었고, 유정복의원이 대표로 있는 특전사동지회같은 곳에 가입하라고 권하던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뜻은 알겠는 데, 그렇게 하는 것은 처신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기다리다보면 정몽준의원이 채용해줄 거라 믿었다. 나는 솔직히 이날 이때까지 살면서 정몽준같은 사람 처음보았다.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인물이었다.
 
대선이 가까워 올 즈음에 필자에게 전화문자가 왔다. 시민단체 행사에 오라는 것이었는 데, 가보았다. 그 곳은 친이계쪽 시민단체였는 데, 그 곳의 분위기가 예상과는 전혀 뜻밖이었다. 친이계 모임행사에서 친박 국회의원 보좌관이 찾아와 명함을 돌리고 있는 데다가 그 곳에서 알게 된 몇몇 사람들에게서 전혀 뜻밖의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 곳의 시민단체의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 20년지기였다. 그 대표와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뭔가 좀 이상한 것같다고 하니까 넌지시 내게 귀뜸을 했다. 이명박대통령의 의중이 박근혜의원으로 정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 그거 아세요? 정몽준의원은 더이상 소망교회 안 나와요``
 
나는 그때 정몽준의원이 소망교회에 나간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정의원이 더 이상 안나간다는 소리를 들이니, `정몽준의원이 이명박대통령과 갈라섰나 보구나`하는 추측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아무리 둘 사이가 거리가 생겼다고 해서 다니던 교회를 딱 끊은 것은 그렇게 좋은 처신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대통령이 정몽준의원을 얼마나 챙겨줬는데, 어느 순간 둘 사이가 틀어졌다고 정의원이 획 돌아선 거 같은 느낌이 드니까 정몽준의원의 인간성이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쯤에 정몽준의원 사무실로부터 내게 문자가 왔는데, 사당동에서 정책발표회 비슷한 거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대세가 박근혜 의원쪽으로 기울었지만, 내가 정치에 큰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정몽준의원이나 끝까지 붙잡고 있자하는 생각으로 사당동 행사에 갔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정몽준의원 행사에 다녀오면 기분이 허했다. 아무 의미없이 왔다갔다 하다 인생끝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혼란스러웠다.
 
다음 날 내가 속해있던 중앙위 문광분과에서 모이라고 해서 갔다. 그리고 중앙위 의장선거가 있었는 데, 중앙위 사람들이 모두 다 친박계인 김태환 의원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한 분이 나보고 딴 데 가지말고 여기서 막대기 풍선가지고 응원가나 부르며 있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이 사람들을 시켜서 내가 정몽준쪽에 붙어있으니까 거기는 종쳤으니 박근혜의원쪽으로 가라는 암시같은 것을 보내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정몽준의원한테 만 정이 다 떨어진 지 오래였는 데, 남자 대 남자로 의리를 지키다보면 결국 잘 되겠거니 했다. 나도 박근혜의원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그리 처신하는 게 인간적으로 맞는 거 같지 않았다. 한 편으로는 내 처지를 이해해주고 나늘 친박쪽으로 가도록 뒤에서 유도해주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큰 고마움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래도 의리가 있는 사람 같았다.
 
집에 와서 생각하면서 나는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였다. 난 이명박 사람이어서 정몽준의원쪽으로 간 것인데 이명박 대통령과 정몽준의원과 갈라졌으니 더이상 정몽준의원한테 붙어 있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몽준과 갈라졌으면 난 당연히 이명박 대통령쪽으로 가야지 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긴 했지만, 쫄딱 망한 상태가 된 정몽준의원을 버리고 떠나는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내가 못할 짓하고 있다는 느낌도 많이 들었다. 내가 그와 함께 할 의무도 없는 데다가 일말의 인간적인 情이라도 나눈 것이 과거에 있었다면 모르겟으나 그런거 전혀 없는 데 왜 내가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나 하는 의문도 들었다. 참말로 인간 하나 정리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그 즈음에 필자가 좀 화 났던 일이 있었는데, 당시 박근혜 의원이 미국뉴욕타임즈에 대북정책에 대하여 기고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정몽준의원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교수의 대북정책을 표절했다는 둥 하면서 박근혜의원에게 항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박근혜의원 측근인 이정현의원이 ``내용이 다른 데 뭘 표절했다고 떠드냐``고 정몽준의원을 향해 반박하였다. 정몽준의원이 말한 대북정책이라는 것은 사실 내가 쓴 칼럼의 내용이었다.
 
필자의 이론을 가지고 자기가 생색내고 있던 것이었다. 사람을 채용도 하지 않으면서 알맹이만 쏙 빼먹는 얌체같은 인간같았다. 그 당시 필자는 블로그를 했는데, 박근혜 의원쪽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내가 박근혜의원한테 준 정책이라고 하면 정몽준의원도 더 트집잡을 일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私席에서 단 한번도 정몽준의원과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고작 행사나 모임가서 우연히 만나 ``안녕하세요`` 한 게 전부였다.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가져야 인연이 되는 것인데 MJ21을 수년 간 하면서도 사석에서 만나 이야기 해본 적이 없다.
 
한번은 관악산에서 등산행사를 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내 뒤에서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뒤를 보니 뜻밖에 정몽준 의원이었다. 정몽준의원과 개인적인 친교는 그게 처음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 슬그머니 같이 사진 한장  박은 게 전부다. 생각해보니 하나 더 있다. 꽃다발 전달하라고 해서 전달한 적도 있긴 하다. 그게 정몽준의원과는 그 두 개 빼고는 없다.
 
남들이 얼핏 보기에는 내가 정몽준의원과 엄청 친한 줄 알 지도 모른다. 실상은 전혀 친밀한 사이가 아닌 데, 대외적으로만 친한 듯이 보이는 것같이 보일 수도 있겠다. 내 스스로 초라해지고 기분이 더러워져서 블로그에 그 사진을 게시했다가 얼마 뒤에 삭제했다.
 
요 근래에 들어서 정몽준의원과 필자의 인간관계는 뺑덕어멈과 심청이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몽준의원은 개인적으로는 친하지도 않으면서 다만 필자가 가지고 있는 대중적 신뢰를 이용해 먹고 싶어하는 사람같아 보였다.
 
예전의 박근혜 의원처럼 그런 속셈이 있던 친이계 후보를 단호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결단력이 필자에게는 없다. 도저히 좋은 인연이 될 수 없고,이용만 당하고 나 자신에게 피해만 가는 인간관계를 분명히 정리하는 기술이 필자에게는 없다.
 
상대방은 나를 이용만하려고 하고 눈꼽만큼도 위해줄 생각이 없는 데, 나는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미련을 갖고 정리를 하지 못하니, 인간관계에서 난 항상 손해를 본다.
 
엊그제 서울에 갔다왔다. 사람을 만나고 왔는 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의원으로 출마할 생각인데, 글 좀 써줄 수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나와서 대화를 나누었으나, 확실하게 대답하였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관여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들어갈려고 기다리고 있는 데, 거기가지 말고 지방선거에 관한 글을 쓰라는 말은 결국 거기 가지 말고 지방선거 끝나고나 가라는 뜻 같아서 내심 많이 불쾌하였다. 말은 시의원으로 나가는 사람 이야기 같았지만 그 말의 이면에는 뒤의 누군가가 복선을 깔아놓은 암시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필자가 청와대에 들어가게 되면 지방선거에 관여할 수 없게 된다. 지방선거에 내가 글 써주길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의 입장은 눈꼽만큼도 생각해주지 않고 오로지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하는 사람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어서 인간적 환멸감까지 느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나를 이번 지방선거까지 이용해먹으려고 할 분이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필자가 도와줬음 하는 사람으로 짚히는 사람은 딱 한 명있다. 도와달라고 사나이답게 찾아와서 떳떳히  이야기 하든가 할 것이지, 사람을 시켜 필자의 도와줄 의향이 있는 지 떠보고 은근히 암시를 주는 것 같아 몹시 불쾌하였다.내 추측이 틀릴 지도 모른다.

하여튼 내 추측이 틀리다면 내가 진심으로 미안한 일이고 사과하겠다. 내 주위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물론 내가 지금 과민한 상태여셔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신중해야겠다. 여러번 생각해 보고 사람을 만나야겠다.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번 지방선거에 필자는 관심이 없다. 서울시장에는 친박 의원이 됐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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