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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01-05 10: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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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기축년(己丑年) 새해인사


만년을 키운 원시림이다.
한낮에도 먹물처럼 깜깜하다.
태고의 시간이라 그렇다.
깜깜함이 향하는 곳은,
빛이 비추는 곳이다.
어둠을 깨우고 싶은 것이다.
그제서야 차가운 어둠이 눈을 뜬다.


세월의 무게를 잴 수가 없다.
다만 마음으로 가늠하여 본다.
천년을 버틴 나무가 쓰러진다.
나무가 자신의 세월을 마침한다.
원시림의 토양은 비옥하다.
생을 마친 나무가 거름이 된 것이다.
사라지는 것은 공허가 아니라,
사라지는 것은 존재를 이끈다.
그것이 바로 원시림의 고운 법칙이다.
쓰러지는 나무가 원시림을 키운다.


어둠을 기다린 가로등이다.
고기를 모으는 집어등이다.
집어등은 빛을 발산하여 모으는 것이지만,
가로등은 빛을 산화시켜 어둠을 깨는 것이다.
비추는 것의 작동원리가 다른 것이다.
은빛 알갱이의 안개가 가로등을 만난다.
차가운 어둠에서 속쓰린 눈을 뜬다.
냉수를 찾아서 벌컥벌컥 들이킨다.
부서지는 안개가 가슴을 후비고 판다.
이별 후의 새벽엔 어김없이 안개가 피어오른다.



이별은 또 다른 기다림이 된다.
이별을 예감하는 만남은 없다.
숨가쁜 만남은 숨가쁜 이별을 동반한다.
한해의 벽두부터 숨가쁜 세월을 사느라,
시간으로부터 너무 멀리 달려 왔다.
어쩌면 되돌아 올수가 없다.
한해의 다짐의 목표를 향하느라,
공간으로부터 너무 높이 날아올랐다.
어쩌면 내려 올수가 없다.


우편배달부가 바쁘다.
우편배달가방에서 마감이 당도했다.
지상에 착지하여 페러글라이딩 접듯이,
새벽 기지개를 켤 때의 가녀림도,
한낮 분망한 바쁨의 성성함도 다 접는다.
안개를 앞세운 새해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우체부의 배달이 그저 고마운 것이다.


날이 아무리 차가워도,
나란히 선 나무는 따뜻하다.
어둠이 아무리 깜깜하여도,
나란히 선 나무는 밝다.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면,
먼저 바람을 맞은 나무가 전령을 보낸다.
그러면 옆의 나무가 대응을 한다.
짙은 어둠이 칠흑처럼 내리면,
먼저 감지한 나무의 잎이 발광체가 된다.
그러면 옆의 나무가 여명처럼 밝아진다.
나무에는 그런 공존의 내막이 있다.


혼자 서있는 나무를 본다.
그 푸름으로 인하여 다소곳하여 보인다.
그 굵은 가지로 인하여 성성하여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고독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혼자서 차가움을 맞느라 그렇게 된 것이다.
혼자서 어둠을 맞느라 그렇게 된 것이다.


태양이 떠오른다.
어둠을 물리칠 때 장엄하다.
태양이 떠오른다.
차가움을 물리칠 때 거대하다.
태양이 떠오른다.
새해를 이끌 때에 거룩하다.
2009년 새해가 우렁차게 밝았다.


햇살은 부서져 내린다.
볕이 안 드는 응달을 배려하기 위함이다.
햇살은 알알이 흩어서 응달에도 따사함을 보낸다.
마치 누나의 손등을 간질러 주는 물방울 같다.
문득 햇살을 닮고 싶다.
짙은 응달로 내달리고 싶은 것이다.
어두운 골짜기를 비추고 싶은 것이다.
냉기가 엄습하는 차가운 땅을 비추고 싶은 것이다.


햇살을 닮고 싶은 이유가 한 가지가 더 있다.
내가 밝으니,
어둠을 먼저 비추듯이,
내가 성할 때에,
상대방을 먼저 챙길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입장의 설파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실타래를 풀고 싶은 것이다.
나의 말을 듣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언어를 더 중하게 경청하고 싶은 것이다.


2009년 기축년 새해에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해답을 찾고 싶은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궁구하고 싶은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실천하고 싶은 것이다.


2009년 기축년 새해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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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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