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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2-09-13 13: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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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국 드라마 제목이 ‘닥치고 패밀리’다. 8월 13일부터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 7시 45분에서부터 35분간 120부 작으로 방영되는 시트콤드라마를 말한다. 자막에 뜬 드라마 제목을 본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세상에? 저 같은 제목을 내세운 방송국이 도대체 ‘어느 방송국일까?’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TV 앞에서 눈을 고정하고 있자니 KBS 2 방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드라마 콘셉트
‘닥치고 패밀리’는 이혼한 중년부부가 재혼을 하며 양가를 사이에 두고 좌충우돌 한다. 여자 쪽은 부유한 집안에 번듯한 직업까지 갖춘 쪽이라서 우성가족이라 부르고, 남자 쪽 가족은 여자 쪽에 비해서 콤플렉스와 부족한 것투성이라서 명명한 이름이 열성가족이다. 가족끼리 온갖 사건과 사고 그리고 이야기 거리가 빈번한 구조로 짜여 진 전형적인 시트콤드라마다.

문제는 KBS
문제는 공영방송인 KBS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앞장서서 막말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방송의 막말 사용이 어떤 식으로 역기능을 미칠지 생각해보지 않았나보다. ‘닥치고’라는 말은 ‘무조건 아무 말 말라’는 뜻의 극도로 강압적인 명령어다. 당연히 저녁시간대에 방영되는 시트콤드라마 제목 치고는 금기시해야할 저속한 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말도 행동이고 행동도 말의 일종이다.’라고 말한 사람은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에머슨이다. 사람이 말을 하려면 삼사일언(三思一言)해야 한다는 옛 충고도 있다. 즉 말을 하려면 세 번 생각한 끝에 조심해서 하라는 뜻이다. 헌데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와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있을 황금시간 대에 방영되는 홈드라마의 제목이 ‘닥치고 패밀리’인 것이다

인간의 마음 한구석에는 고운 언행을 하고 싶은 마음과 되는대로 행동하고 싶은 심리가 양립해 있다. 주변 사람들의 눈총과 체면 때문에 거친 언행을 자제하는가 하면 자기 편안대로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싶은 마음 또한 잠복해 있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그런데 인간의 이런 이중적인 생각을 공영방송이 앞장서서 무력화 시킨다면 나약한 개인은 애써 지키고 있던 체면이나 도덕률을 그나마 놓아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조그만 구멍이 큰 둑을 무너뜨리듯이 사회 구성원들이 하나 둘 너무도 당연하고 쉽게 막말을 내뱉다 보면 그 사회는 분명히 점점 혼탁한 사회로 물들어 갈 것이란 얘기다.

‘어’ 다르고 ‘아’ 다른 말의 가치
그렇지 않은가? 근자에 C급 D급도 못되는 팟케스트 방송에서 ‘닥치고 정치!’란 말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이 사용하는 말이 너무도 노골적이고 저속하여 그런 언사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헌데 KBS가 금세 그걸 드라마 제목으로 차용하여 쓰고 있으니 기가 막힐 뿐이다. KBS는 분명히 ‘닥치고’란 말이 그렇게 부럽고도 좋아보였던 모양이다. 참으로 유치하고 가증스러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KBS는 제발 공영방송에 걸 맞는 품위를 지켰으면 좋겠다.

말은 마음의 초상이다. 또 말은 아름다운 꽃처럼 저마다 색깔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말이 있기에 사람은 짐승보다 낫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짐승 보다 낫다고 자신할 수 없다. 고운 말로도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면 거친 말로는 더구나 어림없는 일이다.

‘닥치고 패밀리?’라고 이런 드라마를 우리가 꼭 봐야하나? 결코 그렇지 않다.

박정례 / 르포작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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