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08-11-27 16:30:47
기사수정

영천 보현산(해발 1126,4미터)


오솔길,
아스라한 오솔길이 계절을 징표하고 있다.
오솔길은 자연이다.
인공이 가미될 여지가 없다.
오솔길은 고향이다.
고향의 집으로 귀가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솔길은 굽이길이다.
굽이에서 끝간 데가 보이도록 가늘게 펼쳐진다.
오솔길은 구부러진 길목에서 끝나는 것이다.

오솔길을 걷는다.
길 위에는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길 위에서는 무용한 것도 멋지다.
길 위에는 낙엽이 지천이다.
쌓여서 그렇게 보인다.
쓸어내지 않아서 그렇다.
아침에는 물기를 품어 영롱하다.
밤에는 온기를 품어서 안온하다.

오솔길 저 너머의 기억이 반추된다.
가로등이 비추는 야광이 희미하다.
굽이 한번 돌아서 저 만치 가본다.
금새 나타날 것 같은 이성을 찾아 떠난다.
내리는 것은 낙엽뿐 공허이다.
내리는 것은 청아한 공기일뿐 사람은 없다.
신작로를 만나는 지점에 오솔길이 끝난다.
신작로를 만나 젊은 방황이 멈춘다.

오! 솔길,
보현산에 탄성한다.
소나무의 길을 접어든다.
산초입부터 소나무가 도열하고 있다.
참나무가 소나무를 에워싸고 있다.
마치 소나무를 호위하는 호위병같다.
보현산에서는 참나무가 소나무보다 더 당당하다.
소나무의 기운을 받아서 그렇다.

산오르는 길,
굽이굽이 오솔길이다.
소나무에 탄성하는 오!, 솔길이다.
발밑에 소나무낙엽의 갈비가 노랗다.
갈비가 발자국 소리를 땅에 전한다.

땅이 포시랍다.
오른쪽으로 휘이 나아간다.
사라지는 꽁무니같다.
왼편으로 휘이 접어들면 뒷길이 사라진다.
길의 지그재그가 대칭을 만들고 있다.
점점으로 오른다.
점점의 발자국을 남긴다.

능선이 적요하다.
멀리 겨울잠행을 떠난 듯,
새들이 산을 비우고 있기 때문이다.
숲이 내려 앉았다.
가을시간을 호령하던 억새가 겨울맞이로 땅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 정중하다.
구들장에 쓰기에 적합한 돌이 평평하게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의연하다.
여름 활엽수를 대체한 소나무만이 푸름으로 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와 자웅을 겨루던 활엽수가 잎을 다 떨구고 있다.
그래서 보현산은 소나무의 산이다.

능선에 오른다.
갈미봉(해발 789미터)이 보인다.
수줍음의 새색씨같다.
옷자락같은 안개로 가리고 우뚝 서있다.
갈미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평화롭다.
갈미봉으로 향하는 걸음이 푸르다.
갈미봉을 바라보는 시선이 맑다.

세상에서 제일 맑은 공기를 느낀다.
소나무가 보내는 반가운 수인사이다.
소나무가 방향타구실을 하고 있다.
산의 품을 기세로 긴 가지를 펼치고 있다.
소나무가지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동남쪽으로 펼친 가지가 일목요연하다.
그래서 소나무가 방향타가 된다.

길에서 벗어나 본다.
소나무에 더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서이다.
소나무가 전하는 음성을 경청한다.
경청하는 것이 세상을 사는 지혜임을 깨닫는다.
소나무앞에서 세상의 소란을 경원한다.

평원같다.
큰 산에서는 완만한 경사가 그렇게 의미된다.
갈미봉 길목에서 평원을 느낀다.
그 옛적에 연기를 피워올렸을 봉수대를 떠올린다.
갈미봉 어디에 그 흔적을 추적하여 본다.
젊음을 다 바쳤을 봉수대의 용사가 떠오른다.
차가운 개울을 맨발로 떠나왔을 젊음이었을 것이다.
사명때문에 고향의 사무침도 참았을 것이다.
갈미봉은 그 세월의 사연으로 바람이 차다.

서두른다.
산행의 정상인 범바위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채석장의 돌이 산성같다.
옛적에 구들장 돌을 파던 곳이다.
구들장 돌들이 하얗게 미소하고 있다.
달빛이 내린다면 반사할 듯 희다.
뒤집은 말굽자석(U) 같은 능선의 원형부분을 돈다.
반환점을 돌아서자 해가 지고 있다.
건곤일척 세상에 알리는 노을이다.
뒤집을 힘이 없어 색깔로 내보이는 노을이다.

비우고서 서있는 참나무이다.
참나무의 낙엽이 지상을 덮고 있다.
낙엽이 만든 희미한 실선을 걷는다.
올려다 보는 것에 공손하다.
내려다 보는 것에 아득하다.

참나무 낙엽의 길이 정갈하다.
형상의 길이 아니라 마음의 길을 찾아 전진한다.
어둠이 동기가 된 것이다.
마음으로 유추한 지름길로 하산한다.
계곡의 맑은 물에 비치는 달이 매혹적이다.
월영을 담아내는 계곡은 말을 잃었다.

천년사찰 거동사의 풍경이 아담하다.
산신각에 오르는 돌길이 투박하다.
석공의 손을 빌린 돌길이다.
거동사에 올려다보는 계곡의 소나무가 휠친하다.
품평회를 연다면 주연에 자리할 것이다.
마주보며 키운 세월이 녹아있다.
그 세월이 천년이라 한다.

시간이 구름처럼 흐른다.
시간이라 하여 흐르는 것으로부터 예외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자리는 그대로인 것이다.
그 자리의 거동사가 천년고찰인 까닭이다.
오솔길을 통하여 거동사에 이른다.
거동사는 자연을 품어 천연의 것이다.
거동사는 시간을 품어 천년의 것이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worldnews.or.kr/news/view.php?idx=1119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정극원 취재기자 정극원 취재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대구대학교 법대 졸업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비교공법학회 총무이사(전)
    한국공법학회 기획이사
    한국토지공법학회 기획이사
    유럽헌법학회 부회장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